아침 7시, 버스를 통해 바르샤바에서 크라쿠프(Kraków)로 이동하였다
폴란드 왕국의 수도를 바르샤바로 옮기기 전까지 수도 역할을 했던 도시이니만큼 한 때는 대단한 번영을 누리던 도시였을 것이다
2차대전으로 인해 막심한 피해를 입은 바르샤바와는 달리 이 곳 크라쿠프는 전쟁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았다고 하는데,
덕분에 옛날에 누리던 부귀영화의 흔적을 잘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된다
바르샤바에서 기차로는 3시간, 버스로는 5시간 걸리는 곳인데 가격 면에서 버스가 월등히 싸기 때문에 버스를 선택!
도착하니 낮 12시가 되었다
나이드신 할머니가 운영하시는 곳이라 한국인들에게 '할머니네'라고 불리는 U Babci Maliny라는 식당
여기에서 우선 점심을 먹기로 했다
헝가리 음식 굴라쉬를 먹었다
굴라쉬는 한국의 육개장 비슷한 음식이라고 알고 시켰는데 기대와는 영 딴판의 음식이 나와서 약간 당황했다;;
하지만 맛은 상당히 괜찮았던 듯...
오늘의 여행 시작~
앞에 보이는 건 플로리안 문(Brama Floriańska)인데, 크라쿠프를 둘러싼 성벽에 있었던 8개의 문 중 현재 유일하게 남아있는 곳이라고 한다
바르바칸(Barbakan Krakowski)이라는 이름의 성벽
바르샤바에서도 바르바칸이 있었는데 크라쿠프에도 있다
예전에는 도시를 지키는 요새 역할을 하던 곳이라고 하는데
이런 요새 건물도 현재 남아있는 게 드물다고 한다
걷다 보면 구시가지의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중앙시장 광장(Rynek Główny)이 나타나게 되고
그 뒤에 길다랗게 세워져 있는 건물은 직물회관(Sukiennice)이 되겠다
크라쿠프 관광의 중심부이니만큼 많은 사람들이 있다
직물회관 건물은 현재 여러 작은 상점들이 줄지어 있는 시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광장 바로 옆에 우뚝 솟아있는 성 마리아 성당(Bazylika Mariacka)
탑에 올라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성당 입장만 하려는데도 입장료를 받는다
그래서 안 들어갔다
바벨 성(Zamek Królewski na Wawelu)
크라쿠프가 수도였던 시절, 폴란드의 왕이 머물던 곳이다
비교적 완만한 언덕이지만
날씨가 너무나도 더운 날이어서 그랬는지 그조차도 버거운 느낌이 조금 들었다
차오르는 숨을 잠시 안정시키고 성 입구에 다다랐다
성직자 느낌이 확 풍기는 이 분은 누굴까...
성 안에 있는 대성당의 모습이다
이런 망루에 올라가면 도시 풍경이 잘 보이겠지?
그렇다면 올라가봐야지
역시, 아주 잘 보인다
안에 위치한 정원도 잠시 둘러보고...
그나저나 오늘 정말 덥다 ㅠㅠ
뭔가 달고 시원한 것을 먹지 않으면 돌아버릴 것만 같아 성 안에 있는 카페에서 그럴듯한 걸로 하나 시켜 먹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이런 날씨에서는 더 이상 한 발짝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성벽 바깥쪽에 새겨진 누군가의 이름들
더워서 그닥 관심은 없었다
아직 날이 훤한데... 마치 새벽 1~2시는 된 것처럼 피곤이 몰려왔다
잠시 숙소에 돌아가서 쉬다 나오기로 했다
가다보면 결국 또 이 직물회관 앞 광장을 지나칠 수 밖에 없다
길을 잃을 염려는 없으니 참 좋군
아직도 여긴 사람들이 참 많다
그러거나 말거나, 너무 더워서 숙소에서 잠시 낮잠을 잤다
2시간쯤 지나서일까, 그래도 뭐라도 더 해야겠다 싶어서 일단 나왔다
'Główny'는 폴란드어로 기차역, 그러니까 여기가 크라쿠프 중앙역인가보다
역 앞에서 고개만 90도 꺾으면 보이는 갈레리아(Galeria Krakowska)라는 백화점
'백화점...?'
더울 땐 이거보다 좋은 선택도 없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서 잠시 들어갔다 나왔다
이제 저녁을 먹기 위해 중앙 광장쪽에 위치한 Restauracja pod Gruszką라는 식당으로 갔다
나름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 같다
폴란드 맥주 Tyskie
이것저것 다 마셔봤는데 폴란드에선 Tyskie가 가장 맘에 들었다
참치 요리를 주문했는데 꽤 맛있었다
근데 맛이 참 익숙하다... 분명 어디선가 먹어본 것 같은 맛인데...
하고 생각해보니, 딱 "고추참치" 맛이었다
어쨌든, 맛있었단 얘기다
다 먹고 나가려는데, 식당 입구 쪽에서 한 아저씨가 나를 부른다
"Where are you from?" "Korea."
여기서부터 이 아저씨가, 아마도 맥주를 기분 좋게 마신 상태로 보였는데, 주절주절 짧은 영어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우리나 너희나 아픈 과거를 가진 나라에서 태어났구나, 인종 차별은 없어져야 한다, 결국 제국주의가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거다, 뭐 이런 이야기로 기억된다 (나나 그 분이나 영어가 짧아서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폴란드 사람들은 한국의 역사에 대해 일정 부분 동질감을 느끼는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대화의 시간이었다
굳이 야경을 볼 생각은 없었는데,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딱 야경 보기 적당한 시간대가 되었다
아마 그 아저씨와의 대화가 꽤 길었던 것도 한 몫 했을 것이다
밤에 보니 왠지 더 멋있어 보이는 성당의 모습
크라쿠프에서는 하여간 별 생각없이 돌아다니다 보면 결국 이 직물회관 앞으로 오게 되는 것 같다
식당에서 나오고 나서부터 잠시 이 광장을 돌아다니던 때까지의 짧은 순간에, 나를 보고 괜히 한 마디씩 건네는 사람들을 서너명은 본 것 같다
내가 한국인임을 밝히면 다들 하는 이야기는 비슷했다: war... tragedy... colonial history... 대충 이런 단어들이 얼핏 들린다
심지어 맥주를 한 잔 사줄테니 잠시 이야기 좀 하다 가자는 사람도 있었는데
싱글 여행자의 본능적인 방어 본능 때문이었을까, 느낌상 나쁜 짓을 할 사람은 아닌 것 같았지만 "곧 친구가 여기로 오기로 했다" 하고 대충 둘러대고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을 보기가 쉽지 않은 나라이기도 하고
역사적인 동질감을 약간 느껴서일 수도 있겠고
폴란드에서 머무르던 기간 동안 거의 매일 나는 이런 사람들을 두서너명씩은 만났고, 그 때마다 묘한 느낌을 받았다
폴란드...
음, 참 재미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