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신시내티의 Opening Day가 찾아왔다

아침부터 Fountain Square에 빨간 옷 입은 사람들이 바글바글거린다

퍼레이드는 12시 시작인데, 명당 자리는 이미 진치고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일단 아침을 먹기 위해 Sleepy Bee라는 카페에 들어갔다

이 곳조차 레즈의 물결로 가득 차 있다
약간의 대기 후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신시내티만의 특색있는 또 다른 음식으로 고에타(Goetta)라는 게 있는데,
과거 신시내티에 많이 모여살던 독일 출신 이민자들이 뭔가 소시지 같은 걸 먹어야겠는데... 하며 만든 음식이라고 한다
다진 고기와 귀리(oat), 향신료 등을 섞어서 만드는데 보통 납작한 패티 형태로 샌드위치에 넣어 먹는다
누구나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맛이고, 함께 씹히는 곡물의 식감과 고소함이 재미를 더해준다
오래된 중국집에서 파는 난자완스를 먹는 느낌과도 비슷했다
근데 여기서도 사이드로 시킨 감자가 너무 맛있다... 한국 감자보다 쫄깃하면서도 약간 단단하고 맛이 더 진한 느낌이다
감자가 맛있는 나라니까 그렇게 감자 튀김을 왕창 먹나보다

즐거운 아침 식사를 마치고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이동했다
Findlay Market까지 가려면 20~30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거리가 안전할까... 하는 아주 쓸데없는 걱정을 했었는데
1시간 전부터 이렇게 사람들로 꽉꽉 차 있어서 전혀 문제는 없어보인다

가는 길에 Washington Park라는 공원이 보였다
사람 모일 수 있는 공간엔 전부 빨간 옷들이 모여 있는 상황이다 ㅎㅎ

이런 유서깊은 퍼레이드에 참여하려면 최소한의 성의는 보이고 싶어서, 어제 황급히 티셔츠를 구입했다
빨간색은 나와 너무 안 어울려서... 씨티 커넥트 디자인으로 골랐는데 마음에 든다

걸어가는 30분 내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어서, 정말 신시내티는 개막전에 진심이구나 싶었다

신시내티 레즈의 마스코트 중 하나인 Mr. Redlegs와 사진을 찍었다

신시내티의 자랑, Findlay Market에 도착했다
1852년에 세워진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장으로 평소에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바로 이 곳에서 개막전 퍼레이드가 시작된다

1년 중 최고의 대목인데 막상 시장 안은 열지 않은 가게도 많고 생각보다 한산하다
오늘은 장사보다 야구가 먼저라는 걸까?

아무리 봐도 귀엽진 않은데, 볼수록 정감가는 캐릭터다
정말 야구 하나만 생각하고 만든 마스코트 같다

퍼레이드 시작 시간이 다가오니 정말 발디딜 틈이 없다

야구장에서 잠깐 보았던 Findlay Market Parade의 역사를 이번엔 제대로 읽어봐야겠다
1919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기념하여 1920년에 이 퍼레이드가 시작된 모양이다
*야구 얘기만 하면 말이 길어져서 큰일인데... 1919년 월드시리즈는 그냥 넘길 수가 없다...
신시내티 레즈와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당시 9전 5선승제로 맞붙었고, 레즈가 5승 3패로 우승한 시리즈인데
이후 화이트삭스 소속 8명의 선수가 승부조작에 가담한 사실이 알려지게 된다
월드시리즈 져주기라는 이 추악한 사건은 블랙삭스 스캔들이라 불렸고, 8명이 영구제명된 화이트삭스에는 기나긴 암흑기가 드리운다
2005년에 88년만의 우승을 차지하기까지, 그들은 레드삭스와 컵스가 그랬던 것처럼 '블랙삭스의 저주'에 시달렸다

모든 팀들이 심혈을 기울여 개막전 이벤트를 준비하지만, 신시내티의 개막전은 유독 특별하다
이 도시에서 개막전이란 단순히 야구 한 경기가 아니라, 신시내티만을 위한 축제이자 휴일인 것이다

최초의 팀 신시내티 레드스타킹스 유니폼을 입고 퍼레이드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저걸 입고 야구하려면 정말 불편했을 것 같다

드디어 퍼레이드 시작!
무려 4개의 마스코트를 가지고 있는 마스코트 맛집 신시내티, 이 녀석의 이름은 Gapper라고 한다
딱히 시작을 알리는 왁자지껄한 식전 행사 같은 건 없고, 조용히 알아서 자기 차례 되면 퍼레이드를 시작하는 모습이다

퍼레이드 참여는 대부분 기업이나 공공기관 같은 곳에서 하는 모양이다
대기업 다니는 익숙한 북극곰이 보이네

이 분들은 신시내티 출신 올림픽 메달리스트들로 추측해본다

남녀노소가 섞여서 아주 평화로우면서도 활기찬 분위기

고인이 된 피트 로즈를 기리는 모습
아무리 팀 레전드여도 그렇지 스포츠 도박을 한 사람을 이렇게 떠받들어도 되나... 싶긴 하다

차 구경하는 재미가 있는 퍼레이드이기도 하다

퍼레이드 조직위원회... 이분들 멋있는 차 타네 ㅎㅎ
이번에는 귀여운 꼬마자동차 퍼레이드!
이러다가 차가 잠시 고장나서 아이들이 급히 하차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퍼레이드 행렬을 따라 걷다 보니 워싱턴 파크까지 왔다
여기에서도 나름대로의 행사를 진행중인 것 같다

행렬을 따라다니다 보니 도시 곳곳을 구경하게 되는 효과도 있다

아까 그 레드스타킹스 아저씨들 차례다

자리 잘 잡으면 테라스에서도 볼 수 있구나

깡통 안에 들어간 아저씨... 맥주회사라서 맥주 좀 드신 걸까?

여성 마스코트 Rosie Red도 등장한다



어느덧 Fountain Square까지 왔다

퍼레이드의 종점인 Taft Theatre까지, 거의 2시간이 걸린 퍼레이드였다

일찍 퍼레이드 마친 팀들은 퇴근 준비를 하는 모습이다
말들도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이게 퇴근의 힘이다!

신시내티 레즈의 홈 구장, Great American Ball Park에 도착했다
이름이 긴 편이라 GABP라고도 많이 불린다

경기 2시간 전부터 게이트가 열리는데 이미 인산인해
그래도 게이트가 여러 군데 있고, 생각보다 짐 검사를 대충해서 입장이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하여간 못생겼는데 자꾸 정이 드는 마스코트들...

일찍 들어오면 타격 연습도 볼 수 있고, 경기장을 한 바퀴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오랜 팀 역사와는 달리 이 경기장은 2003년 개장한 비교적 신식 구장이다
그렇다보니 시설들이 전반적으로 아주 깔끔하다

식사 및 휴게 공간도 널찍한 편이고, 만원 관중이 확실한 이런 날에도 이동하는 게 그리 번잡하지 않았다
아득바득 공간을 욱여넣기보다는 관객 편의를 많이 고려한 느낌이 든다

어린이들 놀이터도 있어서 분위기가 아주 평화롭다

몽고메리 인... 여기에도 있었구나

스카이라인 칠리도...
근데 아무래도 야구장에서 파는 게 본점보단 맛이 없다

공식적으로는 단절된 역사이지만, 신시내티에서는 레드스타킹스를 자신들의 역사로 은근슬쩍 편입시키려는 느낌이 든다
어쨌든 최초의 프로야구 팀 레드스타킹스는 창단 150주년이 이미 넘었다

이것도 나중에 8개 구장을 돌아보고 느낀 점이지만,
이렇게 이동 통로가 넓은 구장이 흔치 않다

Brewery District라고 해서 꽤 다양한 맥주 라인업을 갖춘 곳이 있었다

신시내티 지역 크래프트 비어였는데 정확히 기억은 안 나고, 솔직히 미국 맥주는 별 기대가 안 된다
나이 지긋하신 점원이 신분증 검사를 하길래 한국 여권을 보여줬는데 신기해한다
한국에서 왔다, 신수추 기억해? 그 때 신시내티 훌륭했는데... 이 정도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야구 여행의 한 가지 tip : 백인 할아버지하고 얘기하면 대화가 아주 잘 풀린다. 대부분 나보다 훨씬 지식이 깊은 분들이다

신시내티의 과거와 현재, 울림이 있는 벽화였다

이 순간, 이미 이 여행 목표의 반은 이룬 것 같다

역시 일찍 들어오길 잘 했어

신시내티 최고의 전망대는 이 야구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정도로 강에 딱 붙어있는줄은 몰랐는데, 샌프란시스코의 오라클 파크 못지 않은 절경이다
하지만 구장 특성은 오라클 파크와 정 반대! 바람이 강을 향해 불기 때문에 타구가 잘 날아간다고 한다
쿠어스 필드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져서 그렇지 아주 악명높은 타자 친화 구장으로 손꼽히는 곳으로,
여길 자주 방문해야 하는 NL 중부지구 팀 투수들은 상당히 싫어하는 구장이다
특히 세인트루이스의 레전드 투수 애덤 웨인라이트는 이 구장 성적이 엉망진창이고, "은퇴 후 여길 오게 된다면 아마 이 구장 폭파하는 날일 것이다"라는 말까지 했다고...

정원이 43,500명인데 올 시즌 기준 30개 팀 중 9위의 규모로 상당히 큰 구장이다

처음 본 구장에 가면 홈플레이트 뒤쪽 꼭대기에 올라가보는 걸 좋아한다
딱히 아름다운 구장으로 꼽히지는 않던데, 직접 보니 웅장한 관중석와 그 뒤로 흐르는 오하이오 강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내 자리가 꼭대기층 1열이었는데 은근 무섭다
개막전이다 보니 이 정도 자리만 해도 100달러를 훌쩍 넘는다
그나마도 공홈에선 자리가 없어서 서드파티 기웃거려서 구했다

외야에 치우치긴 했지만 전광판도 잘 보이고, 그 전광판이 파울 폴에 좀 가리긴 하지만, 투명 스크린이 좀 거슬리긴 하지만,
뭐 어쨌든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자리다

설립 연도 1869년의 위엄, 그리고 11명의 영구결번
12번째 멤버로 100% 확정적인 조이 보토의 19번은 언제쯤 여기 걸리게 될까

MLB 경기에는 이런저런 선물을 주는 행사들이 많은데
보통 개막전에는 이런 쓸데없는 소소한 시즌 스케줄을 나눠준다

예보로는 비가 올 수도 있다는데 다행히 날씨가 좋았다, 좀 춥긴 했지만
선수 입장 시작!
마침 상대팀이 이정후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여서, 홈팬들 몰래 찍어보았다
평화로운 관람을 위해, 언제나 홈팀 응원을 선택한다
델라크루즈 티셔츠까지 샀으니 열광적인 응원을 보내야지

양 팀 선수 입장이 끝나고

작년에 사망한 피트 로즈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국가 연주 한 번 요란하게 해 주고, 드디어 개막전을 시작한다

그나저나 자리가 진짜 좀 무섭다

3명의 마스코트가 동시에 등장
3마리? 3개? 3종류? 뭐라고 세야 할지 모르겠다

개막전이니 당연히 에이스 격돌인데, 신시내티는 헌터 그린이 낙점되었다
100마일을 쉽게 뿌리지만 제구력이 약간 불안한 기대주였는데, 작년부터 볼넷과 피홈런이 줄면서 기대가 되는 선수다

샌프란시스코는 당연히 로건 웹
금지약물 전력 때문에 전국적인 인기는 떨어지지만 홈팬들에게는 에이스로 인정받는 투수

올 시즌 레즈의 전망은 이 한 마디로 이야기할 수 있겠다
개막전 4번이 럭스...

시원시원한 스크린만큼이나 제공되는 정보도 다양하다
타구 정보까지 제공하다니 감동이다

저런걸 띠 전광판이라고 하던가, 아무튼 경기장 양쪽의 얇은 스크린으로도 다양한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의 올 시즌 키워드도 마찬가지, 개막전 3번이 이정후!
주말 홈경기에 이정후 응원존을 따로 만들 정도로 진심인 팀인데, 이 선수의 활약에 따라 팀 성적이 크게 좌우될 것 같다
특유의 타격폼은 여전하다
상대편일 때는 악몽같은 선수였지만, 미국에 진출했으니 동포(?)로서 잘 해주었으면 한다

우와, 이렇게 창의적으로 압축된 경기 정보는 처음 본다

경기 중 퀴즈
주관식인데 답이 4개라니, 너무 어려운 거 아닌가 ㅎㅎ

내 팀이 아니다보니 승부 자체에 크게 관심이 있지는 않고,
경기장 풍경 하나는 정말 끝내준다

헌터 그린이 좀 불안했지만 5이닝을 잘 던졌고, 6~8회 불펜 릴레이도 완벽했다
그런데, 개막전 마무리가 이안 지보?
명장 프랑코나 감독이 뭔가 생각이 있으시겠지...는 개뿔이고 이 양반도 이제 나이가 많이 들었구나 싶었다

이 중요한 이닝에 이정후가 등장해서 볼넷을 얻는다
그래도 2아웃까진 잡아내고 잘 막아내나 싶었는데,

경기가 이렇게 되어버렸다

한 점을 만회하는 데 그친 신시내티, 승리의 하이파이브는 샌프란시스코의 몫이었다
첫 경기부터 올 시즌의 미래가 그려지는 듯 한데... 다행히(?) 이날 이후 이안 지보를 다시 마무리로 쓰는 일은 없더라

첫 날부터 너무 시원하게 말아먹으니 팬들도 허탈한 표정으로 경기장을 빠져나간다
델라크루즈와 헌터 그린을 주축으로 한 젊은 선수들의 성장에 희망을 걸 수 있는 팀, 하지만 그 희망이 성과를 보이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보인다

비록 잔치의 마지막에 코를 빠뜨리긴 했지만, 신시내티에서의 오늘 하루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걸어서 금방 호텔에 도착했다
신시내티는 돼지가 유명한가... 아까 퍼레이드에서도 돼지를 봤었는데

저녁은 우버 이츠로 치폴레에서 시켜먹었다
여기 정말 맛있는데, 한국에 들어왔으면 좋겠다

중부지구에서 낮 경기를 끝내고 돌아오니 서부지구 밤 경기가 시작된다
정말 지독한 야구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