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2015 Europe

12일차, Belfast & Derry / 150602

lsgwin 2015. 11. 13. 02:22

벨파스트 둘째 날

악천후로 인해 어제 한 게 아무것도 없는 수준이라 오늘 계획은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좀 했다

미처 둘러보지 못한 벨파스트의 관광지를 둘러볼 것인지, 원래 계획대로 데리(Derry)로 갈 것인지 생각을 하다가

'둘 다 가자!'라는 다소 황당한 결론을 맺게 되었다

 

그러려면 아침부터 일찌감치 일어나서 여행을 시작해야겠지

 

첫 목적지는 타이타닉 박물관

가는 길에 타이타닉을 만들었던 Harland & Wolff (H&W) 사의 대형 크레인을 볼 수 있었다

 

이 배는 SS Nomadic 호인데, 현재 유일하게 남아 있는 White Star Line사(타이타닉의 운항사)의 배라고 한다

타이타닉 침몰 사고 당시에 142명의 승객을 구출한 바 있는, 슬픈 역사를 간직한 채 아직까지 남아 있는 녀석...

 

여기가 바로 Titanic Belfast라는 이름의 타이타닉 박물관

침몰 사고 100주기를 맞아 2012년에 개관한 곳이다

 

아침 9시부터 연다고 해서 시간 딱 맞춰서 도착 

 

 

 

일단 타이타닉을 만든 H&W사에 대한 설명과 그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대해 보여준다

 

타이타닉호의 모형도 물론 있고...

 

 

100년도 더 되었지만 지금 보아도 꽤 호화로워 보이는 내부 모습 

 

2등석

 

일반석에 해당하는 3등석 

 

침몰 당시의 메시지 

 

타이타닉의 두 자매선

 

박물관이긴 하지만 단순히 전시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청각 자료를 활용하여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타이타닉에 대해 아는 거라곤 영화밖에 없었는데 자세한 이야기를 알 수 있어서 유익하기도 했고...

벨파스트에 왔다면 꼭 보아야 할 곳이라고 할 수 있겠다 

 

1층 카페에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했다

 

Titanic Belfast에서 약간 더 걸어가면 타이타닉 호가 출항하기 전까지 머물렀던 Thompson Graving Dock이 나온다

 

여기는 Pump-House

 

세계 최대 규모의 dry dock이었다는 문구

 

타이타닉 호가 얼마나 거대했는지를 설명해주고 있다 

 

내려와서 보니 이 규모가 실감이 난다

 

워낙 거대해서 마치 고래와 같은 모습이었다고 하는군... 

 

날이 추워서였는지는 몰라도, 박물관에는 사람이 많던데 여기서는 두세명의 관람객밖에 보지 못한 것 같다

 

바닷가에 있으니 낡고 녹슨 게 당연하긴 한데, 왠지 좀 쓸쓸해 보인다

 

여기에도 곳곳에 자세한 설명이 나와있는 안내판이 있으니 대충 읽어보면서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Titanic Belfast에서 10분 정도만 걸으면 나오니까 박물관까지 온 김에 여기도 같이 보면 좋겠다

 

 

 

일단 버스를 타고 시내 중심부로 돌아왔다

여기는 시청사(Belfast City Hall) 건물~

 

다시 버스를 타고 찾아간 곳은...

북아일랜드 내전의 흔적이 남아 있는 Falls RoadShankill Road,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Peace Line이다

이 지역에는 왕당파(Loyalist)와 공화파(Republican) 간의 분쟁의 역사를 말해주는 여러 벽화들이 있다

 

일단 Shankill Road부터 간다

 

이 지역에는 왕당파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데, 이들은 영국에서 이주해온 신교도들이라고 할 수 있다

 

 

 

곳곳에 나부끼는 영국 국기만 봐도 여기는 영국 편이구나...하고 느껴진다 

 

"Ulster to England"

Ulster는 아일랜드를 뜻하는 호칭이니, 이들이 뭘 원하는지는 대충 감이 온다

 

Shankill Road에서 쭉 걸어내려오다 보면 이런 장벽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른바 'Peace Line'이다

 

여기에도 벽화가 참 많은데, 이쪽 방향이 Shankill Road 쪽이라 그런지 왕당파 느낌의 벽화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반대쪽 벽은 볼 수가 없으니 확인할 길이 없네...

 

 

뭐 이런 대책없이 거친 표현도 곳곳에 보이고...

 

쭉 둘러보고 있긴 한데, 누가 옆에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다

 

이제 반대쪽 진영, Falls Road로 넘어간다

 

Falls Road는 공화파(Republican) 지지자인 아일랜드인들이 거주하는 구교도 사람들의 지역이다

 

아일랜드를 지지하는 단식 투쟁을 하다 숨진 바비 샌즈(Bobby Sands)의 이름은 이들의 세력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한 마리의 종달새를 가둘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종달새의 노래까지 가둘 수는 없다."

그가 투옥 중에 남긴 한 줄의 시라고 한다

 

당연히 이 동네에는 아일랜드 국기가 휘날리고 있다

 

지금은 내가 이렇게 혼자서 돌아다녀도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 평화로운 분위기가 되긴 했지만,

이 두 세력의 분쟁은 수십년에 걸쳐 지속된 비뚤어진 역사의 한 단면이며, 따라서 이들의 역사에 대해 무지한 내가 그저 책이나 인터넷상의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여기에 그려진 벽화의 의미를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단지,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역사와 닮기도 한 것 같아서, 뭐 한 나라 안에서 빨갱이니 친일파니 우리도 잘들 싸우지 않나...

나름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 분쟁 지역을 거닐어 보았다

 

*Black Taxi Tour라는 게 있어서, 3~4명 정도 일행이 있다면 전문적으로 설명을 해 주는 택시 기사와 함께 좀 더 편하고 효율적으로 이 지역을 다닐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난 혼자라서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포기;;

 

또 다른 역사의 흔적, Grand Opera House

1895년에 오픈한, 겉으로 보기엔 그저 예쁘장해 보이는 건물이지만

1991년과 1993년에 IRA(아일랜드 공화국군)에 의한 폭파 사건으로 인해 심하게 파괴되어 지금은 복원된 상태라고 한다

 

벨파스트에서 가장 유명한 펍, Crown Liquor Saloon

1846년 개장하여 분란이 끊이지 않았던 벨파스트의 현대사를 함께했던 곳이다

Grand Opera House 바로 맞은 편에 있었는데도 이 건물만큼은 숱한 내전을 겪으면서도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벨파스트라는 곳에 볼거리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점심때쯤 되니 얼추 다 돌아본 것 같아서 다음 목적지인 데리로 떠나기로 했다

점심은 버스터미널에서 간단히 빵과 음료수로 때웠는데 빵이 의외로 맛있었다^^

 

 

 

터미널에 적힌 목적지를 보면 묘하게 데리는 Derry~Londonderry라고 표기되어 있다

북아일랜드 분쟁의 대표격인 도시인지라 이름부터 참 골치아프게 생겼다

1613년 영국의 아일랜드에 대한 식민 정책, 즉 'Plantation'에 의해 Derry라는 도시의 이름을 Londonderry으로 개명하였고

그 후로 명칭에 대한 다툼을 지금까지 쭈~욱 계속해온 끝에 지금은 저런 식으로 표기를 하는 모양이다

 

티켓 창구에서 목적지를 말해야 하는데, 직원이 영국 편인지 아일랜드 편인지 알 수가 없으니 괜히 걱정이 되더라;;

결국엔 나도 쓰여진 대로 "데리런던데리"라고 말하긴 했는데 잘 한 건지 모르겠다

 

버스를 타고 1시간 40분 가량 걸려서 데리에 도착!

내리자마자 보이는 화려한 건물이 바로 Guildhall

 

1890년에 건설되었다가 화재로 인해 1908년 재건축되었다

1972년 발생한 유명한 '블러디 선데이' 사건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장소이다

 

 

 

외관 뿐 아니라 내부도 상당히 화려했는데, 마치 큰 성당에 들어온 듯한 느낌이었다

 

2011년에 만들어진 Peace Bridge라는 이름의 다리 

포일(Foyle)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인데, Loyalist들과 Republican들의 거주지를 연결하는 의미로 만들었다고 한다

 

 

 

일단 다리 끝까지 건너가 보았다

 

이 휑뎅그레한 광장은 Ebrington Square라는 곳인데,

19세기에는 항구였다가 후에 영국군의 주둔지가 되어버렸고, 2003년에서야 해산되어 현재는 각종 행사가 벌어지는 시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사실 그건 나중에 책을 보고 알게 된 사실이고, 이 때는 그냥 아무것도 없는 맨땅인줄만 알았다;; 

 

데리의 특징 중 하나가 바로 이 성벽인데, 아일랜드에서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유일한 성벽이라고 한다

 

올라가서 한 바퀴 돌아다녀보았다

 

 

...근데 생각보다 짧다

굳이 한 바퀴를 다 돌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금방 내려와버렸다

 

St. Columb's Cathedral라는 이름의 성당

아일랜드의 수도승 St. Columba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현존하는 데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성당은 이런 식으로 생겼고,

 

1633년 이 성당의 완공을 맞아 돌판에 새겨진 글귀를 성당 입구에서 발견할 수 있다

 

Hand Across the Divide라는 이름의 동상

평화를 염원하는 의미로 블러디 선데이 사건 20주기를 맞아 1992년에 완성되었다

 

과연 이들의 분쟁은 끝난 것일까?

 

그 대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멀리서 보면 맞잡은 듯 보이는 두 사람의 손은 자세히 보면 분명히 떨어져 있다

서로에게 손을 내밀긴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발전이기는 하지만... 아무리 봐도 이들의 갈등의 역사는 참 복잡하다

 

성벽으로 둘러쌓인 데리 중심가에서 약간 서쪽으로 가다 보면 Bogside 지역에 다다르게 된다

북아일랜드 분쟁의 심장부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도 많은 벽화들을 발견할 수 있다

 

"You are now entering FREE DERRY"

의미심장한 문구이다

 

단식투쟁자들을 위한 추모비,

 

그리고 이것은 블러디 선데이 추모비이다

 

1972년 1월 30일에 벌어진 블러디 선데이(Bloody Sunday)

15,000여명의 사람들이 여기 Bogside 구역으로부터 Guildhall까지 행진하는 시위를 벌였는데

영국군이 시위대에게 발포하여 13명의 사망자와 13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에는 누구에게도 혐의가 없다는 식으로 넘어가버린 사건이지만 2000년부터 전면적인 재조사에 돌입했고,

2010년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영국 총리는 그제서야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게 된다

 

많은 벽화들이 건물마다 그려져 있어서 잠시 둘러보았다

 

 

 

 

 

어렴풋한 느낌으로만 감상할 수 밖에 없는 벽화였지만 무언가 공감가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비슷하게 국가에 의한 민간인 학살, 그리고 은폐, 이런 역사를 겪은 나라에 살고 있다 보니 그런 걸까...

어쨌든 이 사건은 영국 총리의 사과라는 형식으로 재평가되기라도 했지만, 우리 나라는 과연 어떤지...

 

즐거워야 할 여행에서 약간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던 하루였지만, 이것이 역사이니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겠지

 

적혀있는 연도를 보아하니 두 차례 세계대전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기념비인것 같다

 

이틀에 해당하는 일정을 하루에 꽉꽉 눌러담다 보니 다소 타이트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할 건 다 했는데 오히려 시간이 살짝 남는다?;;

그만큼 벨파스트나 데리가 그다지 규모가 큰 곳은 아니긴 했지만, 그 몇 안 되는 곳들이 하나하나 인상적이어서 아주 알찬 하루 일정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저녁을 먹기 위해 Browns라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데리에서 점포가 몇 군데 있던데 내가 간 곳은 in town점

 

북아일랜드의 맥주도 먹어보고 싶어서 Belfast Blonde라는 걸 주문했다

다소 심심한 맛이라 그다지 만족스럽진 않았다...

 

오늘의 스프를 시키니 나온 토마토 스프

딱 예상 가능한 수준의 맛이었다

 

메인 메뉴는 연어 리조또

이것도 마찬가지로 아주 전형적인 맛의 리조또랄까... 뭔가 여기서 먹은 것들은 죄다 그닥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느낌;;

 

 

 

벨파스트로 돌아왔다

 

밤 9시가 넘었는데도 날이 이렇게 환한 건 이제 적응이 됐는데, 길거리에 사람이 왜 이렇게 없는 걸까

벨파스트는 원래 그런가보지 뭐...

 

낮에 보았던 Crown Liquor Saloon에 가서 맥주 한 잔~

내부 분위기가 참 고풍스럽고 멋있어서 느낌이 참 좋았던 곳

 

Nicholson's pale ale

에일맥주답게 이건 향이 아주 좋았다! 그렇다고 지나치지도 않아서 부드러운 느낌도 들고~

어제 악천후로 날려먹은 하루는 이 맥주 하나로 보상받는 셈 쳐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