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스위스 여행의 여운이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한 2년 정도 주기로 꾸준하게 여행을 떠날 수만 있다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마음은 굴뚝같지만 시간을 도저히 낼 수 없거나, 듣도보도 못한 역병이 창궐하거나 하는 상황이 있는가하면
이렇게 떠난지 얼마나 됐다고 또 여행을 시작하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다음 여행은 언제, 어디로 떠나게 될 지 알 수가 없으니 그것 또한 여행의 묘미가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번 여행의 테마는 메이저리그 경기장 원없이 돌아보기!
일생에 한 번은 메이저리그 개막전을 꼭 보고 싶었고, 그 도시는 반드시 신시내티여야만 했다
(그 이유는 신시내티에 도착하면 이야기하기로 하자)
직항편이 없기 때문에 오늘은 잠시 시애틀에 머무르다가 심야 비행기로 신시내티로 이동하기로 했다
인천-시애틀 델타항공 왕복 항공권(귀국편은 대한항공 코드쉐어)으로 발권해서 다녀왔다
인천에서 신시내티로 바로 환승하는 항공편이 너무 비싸서, 인천-시애틀과 시애틀-신시내티를 따로 끊는 게 오히려 저렴했다
시애틀에서 8시간 정도 머무른 후 다시 신시내티까지 밤비행기, 그것도 환승편으로 이동하는 혹독한 일정을 고려해서
조금이나마 체력을 아끼기 위해 프리미엄 이코노미로 업그레이드해 보았다
델타항공에서는 '프리미엄 셀렉트'라고 불리는 좌석이다
맨 앞좌석이라 레그룸이 충분해서 좋았다
(하지만 스위스항공 27열만큼의 레그룸은 아니었다...)
제공되는 물품이 제법 많고, 특히 핸드크림 퀄리티가 괜찮았다
거기다가 쓸만한 슬리퍼도 주기 때문에 챙겨와서 미국 호텔에서 잘 써먹었다
식사 시간이 되면 메뉴를 먼저 물어보고 그 후에 제공되는 식으로 서비스가 이루어졌다
식사 전 음료로 레드와인 한 잔을 주문했는데, 엄청 많이 따라준다
지금 미국에 가고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기 시작한다
식사는 이코노미와 비즈니스 사이의 수준에서 나온다
비즈니스처럼 코스 요리로 나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일회용 그릇 대신 식기에 담아주는 정도
그래도 시금치 라자냐는 기내식 치고 상당히 맛있었다 ㅎㅎ
충전 포트가 없을 리가 없는데... 하고 한참 찾다 보니 요기 숨어있었군
두 번째 식사는 스크램블 에그였는데 이건 좀 빈약했다
*프리미엄 셀렉트 이용 소감
좌석 수가 적기 때문에 승무원 서비스가 훨씬 원활하다. 음료나 간식 요청하면 거의 곧바로 가져다주는 편
델타 이코노미를 타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식사의 퀄리티는 이코노미보다 훨씬 나았다
좌석은 KTX 일반실과 특실의 차이 정도? 물론 이코노미보단 편했지만 뒤로 제껴지는 정도는 별 차이가 없어서 숙면을 취하기는 어려웠다
나는 운이 좋았는지 편도 업그레이드 비용이 좌석 지정 비용하고 큰 차이가 없어서 이용하긴 했지만, 이코노미와 비용 차이가 많이 난다면 굳이 프리미엄 이코노미를 다시 이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
미국 동부 직항은 너무 길어서 지겨웠는데, 그래도 시애틀 직항은 갈 때는 10시간 정도여서 할 만 했다
*입국심사 빠르게 하는 tip
MPC(Mobile Passport Control)라는 앱을 깔아서 미리 개인정보를 입력하면 입국심사시 MPC 라인에서 줄을 설 수 있다
작성 후 4시간 동안만 유효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미리 하면 안 되고 미국에 도착해서 해야 한다
그때그때 다르겠지만 나는 MPC 라인에 아무도 없어서 곧바로 입국심사를 할 수 있었다
*입국심사 경험담
시애틀 입국 심사가 까다롭다는 소문이 있는데, 내 생각에 미국 자체가 좀 까다로울 뿐 어느 공항으로 입국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는 질문은 뻔한 것들이었는데... 담당관 명찰에 적힌 이름과 외모를 보니 동남아 출신인지 발음이 익숙하지 않아 좀 당황스러웠다
"목적이 뭐야?" "여행"
"며칠동안 있을건데?" "15일"
"오늘 어디 머물거야?" "나 오늘 밤에 비행기 타고 신시내티로 가야돼"
"신시내티? 거긴 왜 가? 친구 있어?" "야구 보러 갈 거야"
"야구? 거기 말고 또 어디 갈거야?" "이번 여행에서 8개 구장 방문할 예정이야"
"너 신시내티 좋아해?" "아니 사실 나 다저스..."
"허허, 다줘쓰...? 굿 럭"
시애틀에서 왜 굳이 다저스라고 말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사실 딱히 최애팀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냥 가장 무난해보이는 대답을 선택했던 것 같다
내 기억엔 이 정도로, 확실히 다른 나라보다 질문이 많고 유난스럽긴 하지만 자신의 방문 목적과 일정을 정확히 알고 있다면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입국 심사를 마치고 짐을 찾으니 오후 3시쯤, 잠시 공항에 짐을 맡기고 시내 구경을 해 보려고 한다
공항에 짐을 맡아주는 Smarte Carte라는 곳이 있는데, 가격은 좀 사악하다 (소형 캐리어 $17)
그래도 미국 공항에는 테러 위험 등의 이유로 짐을 보관하는 장소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데, 이거라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시애틀의 대중교통 시스템
가장 일반적인 방법으로 ORCA(발급비용 $3)라는 교통카드를 이용하면 시내버스와 Link라는 경전철을 모두 이용할 수 있고 2시간 이내 환승도 가능한데, 편도가 $3이고 1일 무제한권인 Day Pass가 $6이니 대중교통을 2번 이상 이용할 예정이라면 무조건 Day Pass를 구입하면 된다
"교통카드 발급비용 내기 싫은데요?" 그렇다면 Transit GO라는 앱에서 티켓을 구입할 수도 있는데, 다만 단점은 버스 티켓과 Link 티켓을 따로 판매하기 때문에 서로 환승이 안 된다
즉, 하루 종일 Link만 타거나 버스만 탈 예정이라면 Transit GO 앱에서 편도 티켓이나 Day Pass를 구입하면 되고
이것저것 다 타고 싶거나 일정이 확실하지 않다면 그냥 ORCA 카드를 만드는 게 낫다
"난 촌스럽게 실물 카드 들고다니기 싫은데요?" 그렇다면 구글 월렛에서 ORCA 모바일 교통카드를 추가하는 방법도 있다
다른 도시에서는 이렇게 할 경우 교통카드 발급비용이 면제되기도 하는데, 시애틀 ORCA는 구글 월렛으로 발급해도 $3가 부과된다
"구글 월렛 설치가 안 돼요" 미국 가면 됩니다...
"미국 갔는데 안 돼요" 로밍하면 안 될수도 있다고 하니, 현지 유심을 이용하거나 와이파이를 이용해보자
"그래도 안 돼요" 이 경우는 구글 플레이 계정의 국가 설정이 한국일 경우 안 되기도 한다니까, 미국 계정을 하나 새로 파면 된다
말이 좀 길어졌는데
경전철 Link를 이용하면 공항에서 시내까지 단돈 3달러에 이동할 수 있어서 아주 경제적이다
지나가는 길에 보이는 시애틀 매리너스의 홈 구장 T-Mobile Park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방문 구장이기도 하다
몇 시간 정도의 시애틀 관광, 그렇다면 여길 빼 놓을 수 없지!
대표 관광지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
Pike Place Chowder라는 아주 유명한 클램 차우더집이 시장 안에 있다
평소에는 대기가 길다는데 식사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자리를 잡고 가게 구경을 하고 있으니 금방 음식이 나온다
기내식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작은 사이즈로 시켰는데, 너무 맛있어서 금방 퍼마시듯 비워버렸다
무심하게 같이 툭 넣어주는 사워도우 빵도 아주 맛있다
따로 먹어도 풍미가 좋고, 스프에 찍어 먹어도 잘 어울린다
그나저나 시애틀답지 않게 날씨가 너무 좋다
마지막 날 시애틀로 다시 돌아오긴 하지만, 이 행운을 누리기 위해 오늘 열심히 돌아다녀 봐야겠다
시장 자체는 문을 닫을 시간이어서 볼거리가 많지 않았다
저 애플 사이더 가게가 자꾸 눈에 밟혀서 한 잔 사먹어 보았다
쥬스 부페처럼 다양한 종류의 애플 사이더를 마셔볼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케리 파크(Kerry Park)로 이동했다
버스에서 내려서 상당히 고급스러워 보이는 주거 지역을 잠시 걷다 보면 공원이 나타난다
이런 조용한 곳에 유명한 관광지가 있을까 싶다가도
갑자기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케리 파크가 나타나고, 도시의 전망이 아주 잘 보인다
걸터앉을 자리를 잽싸게 선점한 후 잠시 도시를 바라보며 여유를 즐긴다
야경이 멋있는 곳이라고도 하는데, 그 때까지 기다리기엔 체력적인 부담이 컸다
뒷편에 보이는 설산이 다소 쌩뚱맞게 느껴지면서도 멋있다
흐리고 비가 자주 내리는 것으로 유명한 시애틀에서 오늘은 정말 복받은 날씨다
즐거운 마음으로 사진을 찍어보지만 피로를 숨길 수는 없었다
시애틀의 랜드마크인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
안 그래도 입장료가 비싸서 올라가는 게 망설여졌는데, 이렇게 보게 되었으니 이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다시 돌아온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
어떤 골목길로 들어가다 보면
세계에서 가장 불결한 관광지 중 하나로 꼽히는 Gum Wall이 보인다
컬러풀한 색감이 제법 매력적이긴 하지만, 찝찝한 기분을 피하기 어려운 곳이다
축 늘어진 껌들은 보기 좀 역하긴 하다...
여기서 몇 발짝만 더 걸어가면 바다를 볼 수 있다
항구 근처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다고 해서 걸어가보았다
어쩜 이렇게 하루종일 날씨가 좋을 수 있지?
저기 뒤로 야구장이 보인다
여기도 밤이 되면 분위기가 더 좋을 것 같은데, 시간이 많지 않으니 아쉽다
위로 올라가면 전망이 더 좋을 것 같아서 올라가보았다
해질녘과 맞물려 분위기가 상당히 좋다
여기까지 온 김에 안 들를 수는 없는 곳, 스타벅스 1호점이다
1호점 인증 마크까지 달려있는 곳
여기는 앉아서 마실 수 없는 좌석은 없고 굿즈와 테이크아웃 음료만 판매하고 있었다
딱 한두명 서서 마실 수 있는 정도의 자리만 있어서 운좋게 차지했다
커피 맛은... 똑같은 스타벅스 맛이었다 ㅎㅎ
오랜만에 온 미국이라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요즘 미국 치안이 안좋아졌다는 소문이 많아서 밤거리를 걷기는 좀 꺼려졌다
야간 항공편 탑승을 위해 공항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시애틀의 분위기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 정도면 시애틀 시내 구경은 거의 다 한 것 같다 ㅎㅎ
공항에 돌아갈 때도 Link를 이용했다
저녁은 공항에 있는 푸드코트에서 해결
이 정도 먹고 팁까지 내니 27달러 정도
미국 물가에 적응해야 한다...
이제 시애틀에서 오후 11:59에 출발, 시카고에서 환승해서 신시내티까지 떠난다
문자 그대로 '잠 못 드는 밤'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