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러 지난 여행 사진들을 훑어보다 보면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라든지 '감회가 새롭다' 같은, 그런 진부하기 짝이 없는 표현이 절로 나오기 마련이다
다만 이 날의 사진들은 보면 볼수록 한숨이 나오고 우울한 감정에 빠지게 된다
누구나 이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을 그 곳, 오늘 갈 곳은 아우슈비츠다
폴란드어로는 오슈비엥침(Oświęcim)이지만 독일어 아우슈비츠(Auschwitz)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익숙할 것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크라쿠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버스를 타고 이 곳에 오게 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정문에 쓰여진 문구...
Arbeit Macht Frei (일하면 자유로워진다)
강제 노역에 시달려야 했던 당시 수감자들은 매일 이 문을 드나들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1940년 설립된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는 초기에는 20동의 건물로 세워졌는데,
수감자들이 많아지면서 기존 건물들을 2층으로 개축하고 8동을 신설하였다고 한다
유럽 각지의 유대인들을 아우슈비츠에 몰아넣다 보니 규모가 늘어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후에는 제1수용소보다 훨씬 규모가 큰 제2수용소까지 만들었다
워낙 악명높은 곳이라 오랜 기간 유지된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5년간만 이용되었던 모양이다
대부분의 수감자들이 유대인이긴 하지만 일부 폴란드인이나 외국인들도 끌려왔었다고 쓰여있다
이 곳에 세계 각지의 유대인들을 수감하였는데 그 중에는 폴란드, 그리고 인접 국가인 헝가리 출신의 유대인들이 가장 많았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견학을 위해서는 원래 이런 가이드를 따라서 다녀야 하는데, 당연히 입장료가 든다 (그다지 비싸지는 않지만)
단 오전 8~10시에 입장할 경우 무료로 가이드 없이 개인 입장이 가능하다
매점에서 짤막한 한국어 가이드북을 파는데, 영어가 짧은 사람이라면 굳이 영어 가이드 따라서 낑낑거리며 다니느니 책 하나 사서 혼자 읽어보면서 다니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
당시 상황을 다룬 영화들에서 보면 이런 장면이 꼭 나오기 마련인데
이건 영화가 아니다, 실제 사진이다...
가이드가 손으로 가리키는 곳이 이 곳 제1수용소, 왼쪽에 있는 훨씬 큰 블록이 비르케나우에 있는 제2수용소
잘 알려진 대로 수감자들은 대부분 가스실에서 학살당했는데, 치클론 B(Zyklon B)라는 독가스를 이용했다고 한다
많이도 썼던 모양이다...ㅠㅠ
"곧 돌려보내줄테니 가방에 이름을 써서 맡겨라"라는 개드립으로 수감자들의 가방을 빼앗아 보관해놓은 모습
옷이며 신발도 다 뺏어서 모아두었고...
이런 보잘것없는 죄수복 하나로 사계절을 보내도록 했다
수용소 초창기에는 이런 곳에 수감자들을 가득 몰아넣고 생활하게 했다
희생자들의 사진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나중에는 이런 침대를 만들어 주었다고 하는데,
그나마도 한 칸에 두 명이 들어가도록 잠을 재웠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을 따름이다
죽음의 벽(Ściana Śmierci), 수감자들을 총살시킬 때 이 벽 앞에 세워두고 처형했던 곳이다
집단 교수대...
글쎄, 가스실에서 죽는 것보다 이런 식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이 곳이 가스실과 화장터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이런 밀폐된 공간에 "너네 샤워시켜줄께" 하고 꼬셔서 수감자들을 집어넣고 가스를 살포시켜서 죽였던... 그런 곳이다
죽은 수감자들은 곧바로 깔끔(?)하게 화장시켰다고 한다
여기까지, 보면 볼수록 사람 빡치게 만드는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의 모습이었다
이제 셔틀버스를 타고 제2수용소로 간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비르케나우(Birkenau)에 위치한 제2수용소의 입구에 도착하였다
비르케나우는 독일식 명칭이고, 폴란드어로는 브졔진카(Brzezinka)가 되겠다
철도를 통해 무슨 짐짝 운반하듯이 수감자들을 운반하였겠지
지금은 흔적만 남은 철길이지만 그런 의미를 생각하면서 보면 참 슬프기 그지없는 곳이기도 하다
제2수용소는 나치가 전쟁에서 패하고 퇴각하면서 '이거 나중에 걸리면 ㅈ되겠구나' 싶었는지 싸그리 폭파시켰다고 한다
뭐 그래도 급한 와중에 헐레벌떡 저지른 일이라 몇몇 건물들은 현재까지 남아 있다
당시 300동 이상의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67동만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수감자들의 낙서...
여기도 생활 공간은 열악하기 짝이 없다
이런 공간에 창문을 달아놓은들 그게 의미가 있을까 싶긴 하다
'이 곳에 그들의 재가 묻혀 있다'...
나치가 파괴해버린 화장터의 흔적
이 곳은 샤워실로 쓰이던 건물
가스샤워 말고 여긴 정말로 샤워를 하던 곳...이라고는 하는데
당연히 그리 넉넉하게 샤워를 시켜주진 않았다고 한다
여기까지 제2수용소 견학도 완료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현재 모습은 당시 수감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말 그대로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 아니겠는가!
다만 그리 기분좋은 역사는 아니기에 보고 나니 기분이 심히 언짢았다
크라쿠프로 돌아왔다
잠시 남은 시간 동안 유대인들의 거주지였던 카지미에슈(Kazimierz) 지역을 돌아보기로 했다
다소 외곽쪽에 위치한 곳이라 시가지에서 약간 걸어가야 하는 곳이다
강변 산책로를 따라 걷다보니 어떤 철교를 발견했는데,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유대인들을 수용소로 보내던 장면에서 나오던 다리라고 한다
그냥 심심해서 찍은 사진인데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알고 보니 참 묘한 기분이다
유대교를 상징하는 마크와 함께 비석같은 것이 세워져 있는데 뭔지는 모르겠다
유대인 거주지인만큼 유대교 회랑, 즉 시나고그가 군데군데에 세워져 있었다
이 곳은 이자카 시나고그(Izaka Synagoga)
또 여기는 구 시나고그(Stara Synagoga)
이제 여기는 유대인 공동묘지...가 되겠다
또 기분이 영 찝찝해지는구만 ㅠㅠ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어디 희생당한 유대인들이 한둘이겠는가, 규모가 클 만도 하다
아, 하루 종일 가슴 먹먹했던 기묘한 관광을 이제 마치기로 하고
바벨 성 근처에 있는 유명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Pod Wawelem이라는 식당인데 우리나라 가이드북이나 인터넷 카페에 소개된 곳이라 한국인도 많이 찾는 곳이다
저녁 시간대에 이렇게 음악을 연주해준다는 점도 특징
흥에 겨워서 영상도 찍어보았다
하루종일 먹먹했던 기분은 이제 잊고, 맥주나 마셔보자~
그런 의미에서 평소에는 500ml를 주문했지만 여기서는 1000ml로 시켰다
사실 여기는 애매하게 400이랑 1000 단위로만 맥주를 팔아서 그랬던 면도 좀 있긴 하지만...
이것저것 고기에 소시지 모듬요리를 시켰는데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오늘도 생맥주는 Tyskie~ 폴란드 맥주는 이게 제일 마음에 든다!
이렇게 먹고 대충 15,000원 정도 나왔으니 그리 비싸진 않다
여자 알바가 영수증에 귀여운 짓을 해서 괜히 웃음이 나왔다
...알고보니 여긴 원래 다 이렇게 영수증을 준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