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기차여행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 골든패스(Golden Pass)
스위스의 열차 구간 중 특히 경치가 아름다운 곳은 이런 식으로 스페셜한(?) 이름이 붙는다
골든패스는 루체른-인터라켄-츠바이지멘-몽트뢰로 이어지는 코스인데, 나는 인터라켄에서 출발하여 몽트뢰까지 골든패스 라인을 이용하기로 했다
골든패스 라인을 운행하는 열차는 경치 감상을 위해 일반 열차에 비해 더 큰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다
딱 이틀 날씨가 좋더라니...
아침부터 주르륵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한다
인터라켄에서 출발한 골든패스 라인은 츠바이지멘(Zweisimmen)에서 멈춰서고, 여기서 다른 열차로 갈아타야 한다
도착 시간이 약 10:20 정도였는데, 몽트뢰로 가는 10:25 열차로 갈아타려 했으나 갑자기 ㄸ...이 마려운 관계로 다음 시간대 열차로 계획을 바꾸었다
이 돌발 상황이 의외의 행운을 가져왔는데, 다음 열차가 바로 '골든패스 클래식'이라는 특별한 객실을 가진 열차였던 것!
객실 내부를 벨 에포크 양식으로 꾸며 고전적인 느낌이 나는 열차라고 하는데~
어머 분위기 장난 아니다~ ♥♥♥
게다가 내가 탄 1등실 칸에는 종착역에 도착할 때까지 나를 제외한 단 한 명의 승객도 들어오지 않았다
가끔씩 돌아다니는 승무원이 나를 보더니 한 마디 건네더라 : "Oh, it's your private coach!"
'분위기에 취한다'라는 진부한 표현이 딱 어울리는 순간
이왕 이렇게 된 거 정말로 취해보자...하는 생각에 맥주를 하나 주문했다
못 보던 맥주였는데 꽤 맛이 좋았다
아마도 스위스산 맥주였던 것으로 기억되는 Calanda라는 맥주였다
그나저나... 아까 내리던 비는 이제 눈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알프스를 가로지르는 골든패스 안에서 웅장한 자연의 모습을 감상...하려 했으나
오늘도 눈 구경만 하게 될 모양이다 ㅠㅠ
근데, 보다보니 이런 풍경도 썩 나쁘지 않다
높은 고도에서는 이렇게 하얀 눈이 곳곳에 쌓여 있지만,
열차가 낮은 곳으로 내려오니 그래도 스위스다운 푸른 자연의 모습이 보인다
잠시 약간의 눈 구경을 하면서, 골든패스 클래식 열차는 서서히 몽트뢰에 다가가고 있었다
몽트뢰에 도착하여, 일단 수제 햄버거로 점심을 해결한 뒤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였다
몽트뢰(Montreux)
레만 호수 연안에 자리잡은 휴양지 느낌의 조그만한 도시
프레디 머큐리가 너무나도 좋아하던 곳이어서 앨범 레코딩도 여기에서 했다고 한다
열차를 타고 몽트뢰에 오면서 확 느껴지는 변화는, 바로 이 곳이 프랑스어권 지역이라는 것~
취리히, 루체른, 인터라켄에서는 안내 방송에서 독일어를 가장 먼저 내보냈는데, 몽트뢰 근처에 다다를 무렵부터는 프랑스어 방송이 먼저 나왔다
그나마 오스트리아, 독일을 거치면서 독일어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였는데 프랑스어는 처음이라 정말 낯설다
작은 길거리 공연장을 발견~
시장 광장(Place du Marché), 그 앞에는 몽트뢰에서 가장 유명한 무언가가 있는데...
이미 몽트뢰의 명소가 된 프레디 머큐리 동상(Statue de Freddie Mercury)!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 뿐 아니라, 음악에 별 관심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퀸의 음악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것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을 담아, 우산마이크를 들고 그와 함께 사진을 찍어 본다
몽트뢰의 호수 산책로
이 길을 따라 쭉 걸어가다 보면 몽트뢰의 유명한 시옹 성에 다다르게 된다
도보로 40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긴 한데, 나는 시간이 남아돌아서 걸어가 보기로 했다 ㅎㅎ
저~기에 시옹 성의 모습이 살짝 보인다
그냥 쭈욱...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40분을 걷는다는 게 생각보다 고된 일이었다;;
슬슬 시옹 성이 확실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기운을 내서 걸어보자~
얼핏 보면 물 위에 떠있는 성처럼 보인다
시옹 성(Château de Chillon) 도착!
9세기경에 이탈리아에서 알프스로 넘어오는 상인들을 대상으로 통행료를 부과하기 위해 만든 성벽이라고 하는데
이후에 어떤 건축가에 의해 현재의 모습으로 재건축되었다고 한다
성 내부 구경도 잠시 해 보았다
사실... 성 내부 구경은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았다
몽트뢰에 왔으니 이거 하나는 보고 가야지 하는 생각에 들어왔는데 (스위스패스로 무료 입장이 가능하기도 하고)
뭐 유럽의 성이 다 이렇게 생기지 않았나?
성 위에서 바라본 전망...
이 모습도 그리 특별한 건 없었다
몽트뢰 관광은 시옹 성 말고는 딱히 시간이 오래 걸릴 곳이 없었기에 이른 시각에 일정이 끝나고 말았다
그렇다고 어딜 또 가기도 애매한 오후 4시경이긴 했지만
스위스패스 뽕은 뽑고 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레만 호수 근교에 위치한 또 다른 도시 로잔을 향해 출발하였다
몽트뢰에서 기차로 25분 가량 걸려 도착한 이 곳은 로잔(Lausanne)
몽트뢰와 마찬가지로 프랑스어권 도시이고 레만 호수를 끼고 있는 곳이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일텐데... 바로 IOC 본부가 위치한 도시!
중앙역에서부터 이미 올림픽의 도시라고 티를 팍팍 내고 있다~
여기는 팔뤼 광장(Place de la Palud),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있는 분수대(Fontaine de la Palud) 위에는 정의의 여신 조각상이 있다
지붕이 놓여 있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서...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는 로잔 대성당(Cathédrale de Lausanne)에 도착한다
여느 유명한 성당들이 그렇듯이 전망대 역할을 하는 높은 첨탑이 설치되어 있는데
시간 관계상, 그리고 체력 저하로 인하여 첨탑에 올라가는 것은 포기했다
성당 안 구경만 살짝 하고 나왔다
사실 굳이 첨탑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 대성당 자체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성당 앞에서도 꽤 괜찮은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날씨가 어느 정도 맑아진 덕분일까
이 곳에서는 몽트뢰에 비해 훨씬 더 산뜻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대성당에서 내려오면 뤼민 궁전(Palais de Rumine), 그리고 그 앞의 리폰 광장(Place de la Riponne)이 펼쳐진다
대성당과 첨탑이 워낙 높은 데다가 위치 자체가 고지대에 있기 때문에
로잔에선 어디에 있더라도 저 탑이 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
아주아주 짧은 시가지 구경을 마치고
로잔 호숫가에 위치한 우시(Ouchy) 항으로 나왔다
우시 항의 상징과도 같은 초승달 모양의 풍향계(Éole)
이제 인터라켄 숙소로 돌아가야 할 시간
여행을 시작하기엔 늦은 시각에 로잔에 도착했기 때문에 긴 시간을 보내지 못해 아쉬움이 좀 남았다
뭐 그래도 로잔이라는 국제적인 명성을 가진 도시에 잠시나마 발을 붙여보았으니 의미있는 하루였다
다시 인터라켄
어제부터 지나가는 길에 자꾸 눈에 띄어서, 후터스(Hooters)에 결국 들어가보게 되었다
들어와보니 생각보다 평범하다(?)
스위스 맥주 루겐브로이(Rugenbräu) 한 잔을 일단 마시고
중독성이 극심하니 주의! 라고 쓰여진 메뉴판을 보고 호기심에 양파 튀김을 함께 주문하였다
어떻게 만든 건지, 정말로 중독성이 있긴 했다
맥주 맛도 물론 좋았다~
인터라켄에서의 마지막 밤...
인터라켄에서 3일을 머무르게 됐는데
도시 자체만으로 볼 거리가 가득해서 오래 머물게 된 프라하, 빈, 부다페스트, 베를린 같은 곳들과는 달리
인터라켄은 융프라우에 올라가기 위한 거점이자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는 곳, 스위스 중심부에 위치해서 근교 도시들로 이동하기 좋은 위치, 이런 점 때문에 오래 머무르게 되었다
그래서 아마 인터라켄 그 자체로는 많은 추억이 남진 않겠지만,
적어도 이거 하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이 허허벌판에서, 생애 처음으로 패러글라이딩에 도전하여 바로 여기에 무사히 착지하던 그 순간 말이다
근처 슈퍼에서 못 보던 독일 맥주를 발견하여 구입하였다
유럽 여행 47일차, 거의 매일 종류를 바꿔가며 맥주를 마셨는데도 아직까지 못 먹어본 맥주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던...
그런 인터라켄에서의 마지막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