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참 볼거리가 풍성하다
그러면서도 좁은 범위에 옹기종기 모여있다 보니 걸어서 여행하기 참 좋은 도시다
로마에서 5일 정도 머무르면 충분하지 않을까 예상했었는데, 바티칸과 남부투어에 하루씩 쓰다 보니 로마 시내 관광은 3일 뿐이어서 아직도 못 본 게 많았다
오늘은 로마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기에 꼭 가 보고 싶은 곳들로 선별해서 알찬 일정을 짜 보았다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in Cosmedin)이라는 곳을 우선 방문하였다
로마의 휴일에 나와서 유명해진 진실의 입이 바로 이 성당 한 구석에 놓여있기 때문!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입(?), 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à)
여기에 왔다면 누구나 예외없이 해 보는 짓이 있는데...
입 안에 손모가지 집어넣고 짤리나 안 짤리나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다행히 난 진실된 사람이어서(?) 지금 이렇게 멀쩡히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다
여기서 사진만 찍고 가도 0.50유로를 받는 게 좀 아쉽긴 한데, 부담없는 금액이니 그냥 기분좋게 넘어가야지
성당 자체는 매우 작고 아담한 느낌
성당 앞에는 아주 역동적인 모습의 분수대가 하나 세워져 있었다
이제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캄피돌리오 광장(Piazza del Campidoglio)으로 간다
일단 Cordonata Capitolina라고 불리는 이 계단부터가 작품이다
보통 계단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원근법으로 인해 위쪽이 좁은 사다리꼴처럼 보이는데, 이 계단은 위로 갈수록 좌우 폭이 넓어지게 만들어서 그런 시각적 효과를 상쇄시킨다
또한 높이를 가파르지 않게 설계하여 마차로도 이동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광장에 올라오면 세 개의 건물이 보이는데
중앙에 위치한 세나토리오 궁전(Palazzo Senatorio)은 시청사로 사용되는 건물이고, 양쪽에는 누오보 궁전(Palazzo Nuovo)과 콘세르바토리 궁전(Palazzo dei Conservatori)이 있다
미켈란젤로는 이 양쪽 건물을 평행하게 두지 않고 약간 벌어지게 설계하여, 광장의 형태를 사다리꼴 형태로 만들어서 마찬가지로 원근법을 상쇄시키고 시각적으로 넓어보이는 효과를 유도했다고 한다
덤으로 이런 멋있는 조각상도 있어서,
한 번 따라해 보았다
세나토리오 궁전 앞에서 내려다본 광장의 모습
기하학적인 원형의 문양과 그 가운데에 위치한 기마상, 이 또한 아주 멋있는 설계였다
의미를 알고 보니 달라보이는 이 계단을 이제 내려가본다
이탈리아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것 또 하나는 역시 커피~
로마 최고의 카페 중 하나라는 타짜도로(Tazza D'Oro)에서 커피 한 잔을 마셨다
여기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순 없으니 라떼로 먹어보았다 ㅎㅎ
부드러우면서도 커피의 풍미가 풍성하게 느껴지는... 아주 훌륭한 커피였다
'모든 신을 위한 신전'이라는 의미를 가진, 로마의 판테온(Pantheon)
일단 판테온 앞 광장에 있는 분수대와 거대한 오벨리스크가 눈길을 끈다
물론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
분수대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신전 정면의 모습
본디 판테온은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 아그리파에 의해 건축되었는데, 화재를 입고 125년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재건되었다고 한다
안으로 들어와보았다
건축적으로 판테온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돔 형태의 지붕이다
로마에서 돔 구조를 가진 가장 오래된 건물이라고 하는데, 고대 시절에 이런 거대한 돔을 만들었다는게 정말 놀라웠다
꼭대기가 뻥 뚫려있는 것도 특징 중 하나
또 다른 특징, 바로 이 곳에 라파엘로의 무덤이 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움베르토 1세 같은 국왕의 무덤도 있지만, 아무래도 관광객들에겐 라파엘로의 인지도가 가장 높겠지
여기가 바로 그의 무덤...
그 위에는 라파엘로의 흉상이 놓여 있다
바티칸 투어에서 가이드가 해 준 이야기가 기억이 나는데,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의 외모를 비교하면서
"미켈란젤로는 무척 고집스러운 성격에 집안 형편도 어려웠고 얼굴은 추남에 가까웠는데 오래 살았다. 반면 라파엘로는 명문가에서 태어났고 미소년 이미지의 잘생긴 얼굴까지 덤으로 얻었지만 단명하고 말았다" 라고 설명해주었다
가만 들여다보니 그 이야기에 잘 어울리는 얼굴이었다 ㅎㅎ
판테온에서 나와 다음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던 도중 어떤 다리를 건너게 되었다
다리에서 보니 로마를 가로지르는 테베레 강 한가운데 콩알만한 섬이 보인다
찾아보니 티베리나 섬(Isola Tiberina)이라고 한다
로마에 왜 밤섬이 있지... 하고 사진을 잠시 찍었다
아무튼,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을 걸어 도착한 이 곳은 자니콜로 언덕(Belvedere del Gianicolo)
가리발디 조각상이 눈 앞에 보인다면 언덕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뜻이다
가리발디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잠시 감상~
자니콜로 언덕 정상에 위치한 가리발디 광장(Piazzale Giuseppe Garibaldi)
로마 시내 전망을 보기에 좋은 곳이라고 해서 와 보았다
어째 좀 오래 걸리더라니...
전망이 어느 정도 보이긴 하지만 너무 멀리 보인다;;
시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면 여기가 로마인지 모를 것 같기도 하다
카메라 줌을 바짝 땡겨보니 저 멀리 베네치아 광장이 보이는 것 같긴 하다
아무튼 너무 멀어...
여긴 굳이 전망을 보러 올라가기보다는, 혼잡한 로마 관광지에서 잠시 벗어나 맑은 공기를 마시며 가볍게 운동하는 느낌으로 오면 좋겠다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Chiesa di San Luigi dei Francesi)
이름이 매우 복잡한 성당인데, 카라바조의 '성 마태오 연작'이라는 유명한 작품이 걸려 있는 곳이다
성당에 들어선 모습
꽤 유명한 그림인지 여기 주변에 방문객들이 모여 있었다
3개의 이어진 주제를 표현한 성 마태오 연작, 좌측부터 '성 마태오의 간택', '성 마태오와 천사', '성 마태오의 순교'가 되겠다
종교엔 문외한이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명암의 대비를 다소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점과 인물의 표정 묘사, 전체적인 구도가 인상적인 그림이었다
사실... '참 잘 그렸네' 하는 생각 뿐이었다 ㅎㅎ
로마를 떠나는 날인데 피자는 꼭 먹어야지!
PizzaRé라는 가게에 들어가서 우선 맥주 한 잔을 주문했다
오늘은 해물이 듬뿍 들어간 피자를 먹어보았다
아, 정말 황당할 정도로 맛있다
이탈리아 여행은 피자만 원없이 먹어도 본전은 충분히 뽑는다!
기대하지 않았던 Nastro Azzurro 생맥주도 꽤 괜찮았다
이틀 전 포폴로 광장에서 찍었던 사진이 뭔가 좀 아쉬워서 다시 찍었다
...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나도 내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마지막 목적지인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Basilica di San Pietro in Vincoli)
여기도 이름 한 번 되게 복잡한데... 여기에는 미켈란젤로가 만든 모세상이 있다
미켈란젤로의 3대 조각상이라는 피에타, 다비드상, 그리고 바로 이 모세상
좀 더 자세히
미켈란젤로의 조각 작품들은 하나같이 정교함의 끝을 달린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후딱 보고 나와서 좀 아쉽지만, 그래도 이걸 보니 가슴 속에서 어떤 뭉클함이 느껴진다
굳이 이 작품 하나 보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름도 생소한 성당으로 찾아오게 만드는 힘, 그것이 예술이 가진 힘이 아닐까
이제 로마를 떠날 시간이 되었다
책, TV, 영화에서 지겹도록 자주 접했지만 이렇게 직접 몸으로 느낄 수 있어서 감동적이었던 도시
유적지 하나 보고 발만 내딛으면 또 다른 유적이 있고,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게 너무 많아서 지하철 노선을 2개밖에 못 뚫었다는 도시
피자, 젤라또, 커피, 무엇 하나 맛이 없는 걸 찾기가 더 어려운 도시
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도시 로마에서 아쉬운 건 딱 하나 뿐이었다... 왜 여기에 5일만 머물렀을까!
한 도시 여행을 마무리하고 나면 언제나 다음 도시를 상상하는 즐거움이 있었는데
이제 그 즐거움을 누릴 기회는 단 한 번밖에 남지 않았다
너무나도 보고 싶어서 마지막으로 넣었던 도시, 베네치아로 간다
이번에는 Trenitalia 대신 Italo라는 사철 회사의 열차를 이용해 보았다
후발주자이다 보니 약간 더 저렴한 요금이 가장 큰 장점이고, 열차도 신형이라 깔끔하고 쾌적하다
소도시 구석구석까지 운행하지는 않지만 이런 주요 도시 간의 이동에서는 아주 좋은 옵션인 것 같다
3시간 20분 가량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에 도착~
점심에 이어 저녁도 피자~
늦은 시간이고 피곤하기도 하고 해서 숙소 근처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서 먹었는데 맛이 꽤 괜찮았다
유럽, 특히 이탈리아에서 피자는 웬만해선 실패 확률이 없는 음식이다 ㅎㅎ
어제 남부투어에서 사온 이탈리아 전통 레몬주 Limoncello를 시음해보았다
(한 병 통째로 마시는 것도 시음이냐)
여행이 끝나가는 우울함 때문이었을까, 술이 달게만 느껴진다
...사실 실제로 단 맛이 강한 술이긴 한데 34도짜리여서 상당히 독하다
그렇게 얼큰하게 취한 상태로 잠이 들었다
이제 유럽 땅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딱 이틀 하고도 반나절
'정말 원없이 제대로 여행하고 돌아가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내일부터 베네치아 일정을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