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렇듯, 여행에서 2주라는 시간은 정말 순식간에 흘러간다
오늘 저녁 시애틀로 이동하고 내일 마지막 야구 경기를 보고 나면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게 된다
체력은 떨어져가지만 이 소중한 순간이 너무 아쉬워서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며 알찬 여행을 하리라 다짐한다
어제처럼 호텔 조식은 돈 내고 맛있게 먹었다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맡기려는데... 이 호텔은 짐을 맡아주는 서비스가 없다고 한다???
아니 이름없는 호텔도 아니고 메리어트에서 이게 말이 되나 싶긴 한데, 내가 제대로 이해한 건지 다시 물어보니 건너편 호텔에서 유료로 짐을 보관해준다는 황당한 답변을 듣게 되었다
그 호텔에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니 Bounce라는 앱을 깔고 거기서 짐 보관을 신청하라고 한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렇게 하긴 했지만, 예기치 않게 시간과 돈을 허비하니 기분이 영 찝찝했다
거기다가 오늘부터는 목감기도 제법 심해져서 근처 약국에서 감기약을 하나 사먹었다
사탕처럼 빨아먹는 약인데... 묘하게 효과도 있는 것 같고 사실 제법 맛있어서 자꾸 먹게 되었다 ㅎㅎ
샌프란시스코 3일차가 되어서야 케이블카를 이용할 수 있었다
PM, PH, CA 3가지 노선이 있는데 PH 노선은 항상 사람이 붐빈다고 해서 나는 PM 노선을 이용했다
일반 Muni Day Pass로는 케이블카를 탈 수 없고, 케이블카가 포함된 Day Pass를 구입하거나 따로 8달러짜리 Single Ticket을 사야 한다
예상대로 한적해서 아주 좋다 ㅎㅎ
주요 관광지를 PH가 지나가기 때문에 인기가 많나본데, 몇 블록만 더 걸어가면 PM을 탈 수 있으니 너무 붐비는게 싫다면 고려해볼 만 하다
이게 트램이지 왜 케이블카냐 의구심이 들 수도 있는데...
보통의 케이블카와는 반대로 케이블이 바닥에 깔려 있고 이 케이블을 통해 추진력을 얻는 방식이라 위아래가 바뀐 케이블카라고 보면 된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를 함께 이용하기 때문에 그립맨(Gripman)이라 불리는 사람이 케이블카를 직접 조종하면서 운행한다
경적을 울릴 때도 손수 종을 쳐야 되고, 속도 조절도 전부 수동으로 이루어져서 그립맨이 상당히 분주해 보였다
이걸 타고 도심을 지나가니 사람들이 많이들 신기하게 쳐다보고, 내가 관광객이 된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
종점인 파웰(Powell) 역에 도착했다
사실 교통수단으로만 이용하기에는 느리고 시끄러운데 비싸기까지 한 비효율적인 방식이지만, 오래된 전통을 유지하면서 관광 상품으로 활용하는 모습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방향을 바꾸려면 턴테이블 돌리듯 케이블카를 직접 손으로 밀어서 돌린다고 하는데, 그 장면은 직접 보지 못했다
코로나 이후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 지역 치안에 대해 흉흉한 소문이 있긴 한데, 막상 와 보니 낮에는 딱히 위험해보이진 않았다
물론 홈리스나 약에 취한 사람은 간간이 눈에 띄긴 하지만 다른 도시에 비해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잠시 다운타운을 거닐어보는데 건물들이 개성있고 멋있다
공항 접근성을 고려하면 이 동네에 숙소를 잡는 것도 괜찮았겠다 싶은 생각이 살짝 들었다
여기 메리어트는 짐 맡아 주겠지...?
도심 속에 위치한 어느 공원
Yerba Buena Gardens라는 곳인데 그렇게 크진 않지만 분위기가 괜찮았다
샌프란시스코 치안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겁을 먹었던 것 같아 뒤늦게 후회된다
미국에서 손꼽히는 현대미술관 중 하나라고 하는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San Francisco Museum of Modern Art, SFMOMA)에 방문했다
여기서도 쿠사마 야요이의 또 다른 미러룸을 볼 수 있다
Dreaming of Earth’s Sphericity, I Would Offer My Love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LA에서 본 인피니티 미러룸과는 달리 색감이 알록달록하고 알(?) 하나하나가 큼직하다
여기도 시간제한이 있으니 사진을 빠른 시간 내에 찍고 감상하는 게 좋다
개인적으로는 LA보다 여기가 더 마음에 들었다
대기 인원이 더 적어서이기도 하고, 원색적인 컬러가 조금 더 내 취향을 자극하는 것 같다
라그나르 카르탄슨(Ragnar Kjartansson)의 The Visitors라는 영상 작품
여러 사람들이 각자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영상이 합쳐져서 마치 합주하는 느낌을 준다
아이슬란드 출신 예술가라고 하는데, 딱 그 동네스럽게 음산하고 우울한 느낌이다
여기서도 현대 미술의 고전(?)이라 할 만한 유명 아티스트의 작품들을 많이 접할 수 있다
이런 짓 할 사람 누구겠나, 앤디 워홀의 Triple Elvis
복붙 매니아의 또 다른 작품 Nine Marilyns (Reversal series)
호박 성애자로도 유명한 쿠사마 야요이의 Aspiring to Pumpkin’s Love, the Love in My Heart
작품 이름 자체가 호박에 대한 사랑 고백에 가깝다
얇게 썰어서 말리다가 뒤틀린 호박 같은 모양이랄까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의 One-way colour tunnel
직접 들어가보니 색이 계속 바뀌는 모습이 신기하다
복도에 놓인 정체불명의 사과
7층부터 시작해서 내려오면서 감상하다가 잠시 테라스에서 휴식을 취했다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의 모자를 쓴 여인(Femme au Chapeau)
피카소가 그린 정물화
1917년 작품이니 고전 중의 고전...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Fountain
이 정도면 이름 크게 써 놓은 수준, 몬드리안의 작품
프리다 칼로의 전 남편이자 평생의 연인이었던 디에고 리베라의 작품, The Flower Carrier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프리다 칼로의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도대체 왜 디에고 리베라에게 그토록 사랑에 빠졌을까
잭슨 폴락의 Guardians of the Secret
이브 탕기(Yves Tanguy)의 Arrières-pensées
앤디 워홀의 자화상
마지막으로 카라 워커의 Fortuna and the Immortality Garden (Machine)
더 브로드에서 보았던 African't라는 작품도 그렇고, 이 예술가의 주제는 대부분 흑인, 그리고 여성이다
일단 본인부터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 아티스트이다 보니 이런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작품들이 많고, 요즘의 시대적 분위기에도 어울리다 보니 여러 미술관에서 그녀의 작품이 크게 전시되는 것 같다
가만 보니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습이 상당히 기괴하다
현대미술관도 여러 번 다녀보니, 이름만 현대미술이지 너무 많이 접해서 익숙한 작품들은 식상하거나 지루함마저 느껴지는 반면 현재 활동하고 있는 이런 예술가들의 작품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물론 피카소나 앤디 워홀 같은 유명 예술가들도 너무 좋지만, 이제 '현대 미술'이라는 범주에 넣기에 이런 분들은 너무 올드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된다 ㅎㅎ
샌프란시스코에서 피자로 유명한 집이 있다고 해서 빼놓을 수가 없었다
Tony's Pizza Napoletana라는 곳이다
가게 이름은 나폴리 피자 전문처럼 써놓고는 온갖 스타일 피자를 다 파는 특이한 곳이었다
고민 끝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마르게리타를 선택했다
분위기는 또 막상 이탈리아식은 아니고 미국 스포츠 펍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이탈리아 피자니까 그래도 페로니가 낫지 않을까 해서 시켜보았다
별로인 거 감안하고 시켜도 늘 별로인데 왜 피자집 올 때마다 페로니를 시키는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드디어 피자가 나왔다!
크기는 미국이지만 맛은 제대로 이탈리아였다
앞에서 응대해주는 아저씨가 정말 유쾌하고 농담도 걸어주면서 친절하게 대해줘서 기분이 더욱 좋아지기도 했다
그래서 아무래도 평소보다 팁을 더 후하게 냈던 것 같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The Buena Vista라는 카페인데, 아이리쉬 커피로 아주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샌프란시스코 여행 정보를 검색할 때마다 이 곳이 정말 자주 나와서 도대체 어떻길래 그러나 하는 호기심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일단 분위기는 합격, 전통이 느껴지면서도 깔끔하다
미국 각 주의 경찰서 뱃지로 데코해놓은 모습이 흥미로웠다
이게 그 유명한 아이리쉬 커피!
위스키가 들어간 커피라서 쌉싸름하면서도 생크림의 부드럽고 단 맛이 살짝 섞이는게 아주 오묘하다
아일랜드에서 마셔본 게 벌써 9년 전이라 정확한 비교는 어렵지만 이 정도면 아주 우수한 퀄리티라고 생각된다
공항으로 떠나기 전 3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은 녀석들을 찾아가기로 했다
피셔맨스 워프의 바닷가를 따라서 쭉 걸어간다
다시 찾은 피어 39
바다사자 다시 안 보고 가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여전히 세상 여유로운 모습으로 뒤엉켜서 쉬고 있는 바다사자들
다들 건강하고 사이좋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이렇게나 편안한 모습을 보니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10분 걸어와서 10분 보고, 다시 10분 되돌아갔다
피어 39 안에 있는 작은 부댕 베이커리가 본점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대놓고 크게 본점이 있었는데 그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바트(BART)를 타고 샌프란시스코 공항으로 이동한다
다양한 항공사를 이용해보고 싶어서 이번엔 알래스카항공을 선택했다
샌프란시스코-시애틀 구간은 단거리라서 간단한 간식 정도만 제공된다
워낙 짧아서 장단점을 느낄 새도 없긴 한데, 특징이라면 원월드 소속이지만 대한항공과 제휴되어 있어서 마일리지를 대한항공으로 적립할 수 있다
다시 돌아온 시애틀 공항
마치 첫날로 되돌아온 것 같...았으면 좋겠지만 전혀 아니었다
밤에 도착해서 대중교통 이용하기가 약간 부담스러우니 우버를 탔다
우버 픽업 존이 따로 지정되어 있으니 잘 찾아가야 하는데, 공항에서 바로 밖으로 나가지 말고 다리를 건너 주차장 건물이 나타나면 3층으로 내려가면 된다
이번 여행 마지막 호텔은 Hyatt Place Seattle/Downtown
이름과는 달리 다운타운에서 그리 가깝진 않다
드디어 시애틀에서 잠을 잘 수 있다... 잠 못 이루는 밤 따위의 드립은 당장 그만둬야지
시애틀의 랜드마크 스페이스 니들(Space Needle) 뷰 객실로 예약했는데, 알고보니 약국 뷰였다
저녁을 못 먹어서 밤늦게 우버 이츠로 배달시킨 타코
Carmelo's Tacos라는 곳이었는데 기대보다 상당히 맛있었다
여행도 하루, 야구도 한 경기 남았네... 마지막까지 후회없이 즐기고 돌아가리라 다시 한 번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