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추억을 남긴 여행지에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건 큰 행운이고 축복이다
7년 전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있는 도시, 시카고로 간다
시카고로 가는 새벽 4시 30분 기차를 타기 위해 세인트루이스 역으로 향했다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이 Gateway Transportation Center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어 있는데, 규모가 작은 건물이라 헷갈리진 않는다
이 시간에 이동하는 게 위험하진 않을까 살짝 걱정되긴 했지만 우버나 리프트를 이용하면 별 문제는 없어 보이고 역 주변도 수상한 사람 없이 잘 통제되어 있었다
시카고행 첫 차인데 이용객이 제법 많았다
(출처 : 암트랙 홈페이지 https://www.amtrak.com/)
미국의 여객 열차는 암트랙(Amtrak)이라는 곳에서 운영한다
기차 여행하기 좋은 나라는 아니지만 그래도 중부 지역은 시카고를 중심으로 촘촘하게 노선이 배치되어 있다
미네소타(미니애폴리스), 밀워키, 캔자스시티, 세인트루이스, 신시내티, 클리블랜드, 디트로이트 등 시카고를 거점으로 해서 무궁무진한 야구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운행편이 하루 1~2회 뿐이거나, 너무 늦거나 이른 시각에 운행하는 등 생각보다 활용도가 높지는 않다
그래도 시카고-세인트루이스 구간은 하루 5회 운행하고 5시간밖에(!) 걸리지 않아서 인기가 높으니 미리 예매하는 게 좋다
기차에서 잠을 좀 보충해야 될 것 같아서 편안한 특실로 예매했다
일반실은 Coach, 특실은 Business Class라고 부른다
암트랙은 지정석 개념이 없어서, 그냥 빈 자리에 앉아있으면 출발하자마자 직원이 와서 티켓을 확인하고 위쪽 짐칸에 색종이를 꽂아서 주인 있는 자리라고 표시를 해 준다
시차 적응도 아직 덜 되고 해서 생각보다 잠이 안 오길래 돌아다니면서 매점 구경을 해 보았다
커피가 2.25달러밖에 안 해서 시켜봤는데, 보온병에 담긴 커피를 그냥 따라준다 ㅎㅎ
옛날 가족여행 가면 엄마가 보온병에 담아온 보리차를 따라주시는 그런 정겨운 느낌... 뭐 그건 나쁘지 않았지만
이게 커피인지 보리차인지 헷갈릴 정도로 연한 맛이었다
미국에서 싼 건 다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해가 떠오르고, 창 밖을 보니 영화에서나 보던 광활하고 황량한 풍경이 나타난다
딱히 평화롭거나 고요한 느낌보다는, 여기서 사람 하나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보통 이런 데서 갑자기 총성이 울리고 사람 하나 쓰러지고... 그러면서 영화가 시작되던데
다행히 살아있는 상태로 시카고에 도착했다
기차로 시카고에 오는 건 처음이라 새로운 느낌이고, 기차역이 너무 멋있어서 일단 놀랬다
미국의 철도는 19~20세기 무렵의 서부 개척, 남북 전쟁 등 역사적인 필요성에 따라 효율적인 물류 운송을 위해 발전해왔고, 그렇다보니 대도시의 기차역들은 고풍스러운 모습으로 남아있는 곳들이 많다
그러니 기차를 이용하지 않는 여행객들도 기회가 된다면 잠시 역 구경이라도 해 보면 재미있을 것이다
겉모습도 아주 멋있는 시카고의 유니언 스테이션(Union Station)
무려 1925년에 지어진 역이라고 한다
중부의 귀여운 도시들에 있다가 시카고로 넘어오니 대도시의 느낌이 확 든다
'아, 내가 그 때 정말 멋진 곳을 여행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잠시 아리송한 감상에 빠진다
아주 오랜만에 만난 반가운 친구와의 조우라고나 할까...
벌써 7년이나 지났네, 넌 참 여전하구나, 난 이렇게 변했는데,
아냐, 너도 참 한결같아, 변한 건 시간밖에 없어,
말이라도 고맙네, 미안, 바빠서 먼저 가 볼께, 다음엔 꼭 여유롭게 오랫동안 보면 좋겠다,
이런 이유없는 감정이 느껴지는 건, 어쨌든 아주 좋은 도시라는 얘기다
모든 게 오랜만이라 낯설지만, 막상 발을 딛으면 기억이 떠오른다
구글맵에서 전철 브라운 라인을 타라길래 따라갔는데 길이 요상하다...
맞아, 이 대구 3호선 같은 요상한 모노레일 같은 이 녀석, 기억난다
시카고의 대중교통 이용 방법은 아주 심플하다
Single $2.50, 1일권 $5니까 그냥 1일권 사면 된다
1일권은 종이 티켓으로 발급되니까 교통카드를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
시카고 음식 중 이탈리안 비프라는 걸 유튜브에서 본 적이 있다
엄청 맛있게 먹길래 구글 맵에 저장해뒀는데 이렇게 먹게 되네!
오픈 시간에 맞춰서 Al's #1 Italian Beef라는 가게에 찾아갔다
메뉴는 이것저것 있는데 유명한 이탈리안 비프 먹어야지!
먹는 방식은 소스가 적당히 묻어있는 wet(regular)와 샌드위치 전체를 소스에 담구는 dipped가 있다
유튜버는 dipped를 강추했지만 난 손에 음식 묻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wet으로 주문했다
wet으로만 시켜도 충분히 소스가 많이 묻어있어서... 포기하고 손으로 집어먹었다
일단 고기의 질감이 독특하다, 생고기라기보단 약간 햄처럼 가공육 먹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향신료 향이 은은하게 배어있어서 중국 음식 같은 느낌도 나는데, 심하진 않으니 한국인에게도 잘 맞을 것 같다
가장 맛있는 건 역시 소스였다! 괜히 흥건하게 담궈먹으라고 하는 게 아니었어...
어차피 손 쓸 거 dipped로 시킬 걸 하는 후회는 들었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으니 만족!
배불리 먹고 나서 잠시 시카고 강을 따라 걸어보았다
일단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이 있으면 웬만하면 다 멋있어보이긴 한다 ㅎㅎ
리버워크(Riverwalk)라고 해서 시카고 강을 따라 걸을 수 있는 산책로가 잘 만들어져 있다
날씨가 좋진 않지만, 분위기 하나는 끝내준다
동부의 화려함과 서부의 여유로움의 딱 중간 정도,
반대로 동부처럼 극성스럽지도, 서부처럼 심심하지도 않게 딱 적당히,
시카고라는 도시의 느낌은 딱 그렇게 적당히 아름답다
시카고에 머무르는 시간은 오늘 하루 뿐이라, 산책은 이 정도로 마무리한다
아까 탔던 브라운 라인이 저렇게 생겼다
도로 위로 다니기 때문에 처음엔 이게 맞나 좀 헷갈린다
대구 사람들은 익숙하겠다, 3호선 생각하면 되니까
시카고의 랜드마크 하면 여러 가지가 떠오르는데, 시카고 극장(Chicago Theatre)도 빼 놓을 수 없다
막상 정면에서 보면 좀 밋밋하고, 옆에서 보아야 더 예쁜 묘한 건물
이번 여행의 주 목적인 야구 볼 시간이다
지난 여행에서 컵스의 리글리 필드는 방문했었지만 화이트삭스는 빼먹어서 마음 속에 숙제처럼 남아있었는데, 이렇게 돌아와서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시카고는 대중교통이 아주 잘 되어 있어서 두 구장 모두 전철로 찾아가기 쉽다
레드 라인을 타고 Sox-35th역에서 내리면 바로 경기장이 나타난다
개막 시리즈에 주말 경기인데도 구장 주변이 너무 한적하다
일기 예보가 매우 안 좋았던 영향이 물론 있긴 하겠지만...
어쨌거나, 화이트삭스의 홈 구장 레이트 필드(Rate Field)에 도착했다
일요일 경기나 시리즈 마지막 경기는 보통 낮 시간으로 배정되는 편이라 오늘 일요일 경기도 1시 10분 시작이었다
화이트삭스에겐 미안하지만, 솔직히 밀린 숙제 꾸역꾸역 끝내는 느낌으로 오긴 했다 ㅎㅎ
30개 구장을 모두 밟아보겠다는 인생의 목표는 있지만 모든 팀에 똑같은 관심을 줄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별 기대 없이 와서 그런지 의외로 구장이 멋있어서 놀랬다
입구에 놓인 멋진 조형물은 2005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기념하는 Championship Moments라는 작품
1991년 개장했으니 2005년 전까지는 이게 없었단 얘긴데, 그렇다면 그 당시엔 이 주변 풍경이 상당히 밋밋했을 것 같다
옛 구장이었던 코미스키 파크(Comiskey Park)의 홈 플레이트 자리를 보존해놓은 모습
역시 이런 건 참 잘 한다 미국이
게이트 주변에도 관중들이 그렇게 많진 않고, 경기를 앞두고 신나는 분위기가 덜한 건 사실이다
통산 3회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화이트삭스!
컵스에 비해 역사, 성적, 인지도, 인기 모든 면에서 밀리는 팀이지만 우승 횟수만큼은 3회로 동등하게 비비는 중이다 ㅎㅎ
두 팀 다 2번째와 3번째 우승 사이에 엄청난 기간이 걸렸다는 점도 공통점
(이유는 이 블로그에서 이미 언급해서 생략)
이 구장에서 봐야할 게 뭐가 있는지 미리 찾아봤는데 그렇게 많지는 않다
일단 경기장에 입장해서 걸어가다 보면 2009년 마크 벌리(Mark Buehrle)의 퍼펙트 게임을 기념하는 공간이 나타난다
팀 스토어도 잠깐 구경
보통 경기일에는 엄청 바글거리는 게 정상인데, 아주 여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제법 오래된 구장이지만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어서 낡은 느낌은 별로 없다 (관중이 적어서 그런가?)
제법 예쁘고, 제법 깔끔한데 뭔가 밋밋하고 개성이 부족한 느낌의 구장...
이 곳을 둘러본 나의 첫 인상은 아주 뚜렷했다, 나는 이 곳을 '검은 챔피언스필드'라고 느꼈다
1991년 개장한 이후 팀의 추억들을 경기장 곳곳에 그려놓았다
사실 그렇게 추억할만한 게 많은 팀은 아니다 ㅎㅎ
2005년 월드시리즈 우승의 순간, 이게 이 구장에서의 유일한 월드시리즈였다
마크 벌리의 퍼펙트게임을 지켜낸 호수비 장면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친 스캇 포세드닉
얻어맞은 투수는 추억의 이름, 브래드 릿지였다
사실 꽤 괜찮은 마무리 투수이긴 했는데, 하필 박찬호와 필리스에서 함께 뛴 2009년에 자주 말아먹은 탓인지 방화범 느낌으로 각인되어 있는 선수였다
외야 쪽으로 팀 레전드들의 동상이 놓여 있다
화이트삭스 역사상 최고의 강타자, 통산 521홈런의 프랭크 토마스(Frank Thomas)
비슷한 시기에 활약했던 폴 코너코(Paul Konerko)
1950년대의 스타 플레이어 미니 미뇨소(Minnie Miñoso)
한 시대를 풍미한 명 포수 칼튼 피스크(Carlton Fisk)
무려 43세 시즌까지 주전 포수였고 45세에 은퇴하며 엄청나게 롱런한 선수였다
1950년대의 에이스 빌리 피어스(Billy Pierce)
유독 50년대 선수들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블랙삭스 스캔들 이후 오랫동안 암흑기를 겪다 1959년 딱 한 번 월드시리즈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50년대의 키스톤 콤비였던 루이스 아파리시오(Luis Aparicio)와 넬리 폭스(Nellie Fox)
특히 아파리시오는 통산 9회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유격수였고, 베네수엘라 최초의 명예의 전당 멤버이기도 하다
이렇게 좋은 선수들이 많았던 시기였지만 1959년 준우승에 머무르고 나서 화이트삭스는 다시 한참동안 월드시리즈 구경을 못 했다
그 한을 드디어 2005년에 풀었으니, 무려 88년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이었다
염소의 저주, 밤비노의 저주는 야구 잘 모르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보았을 텐데
블랙삭스의 저주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야구에 관심 많은 나조차도 2004년이나 2016년은 아주 강렬하게 기억되어 있지만 2005년에는 그런 일이 있었나? 싶으니 뭐 ㅎㅎ
저주의 인지도조차 라이벌에게 밀리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화이트삭스의 역사!
이 선수는 해롤드 베인스(Harold Baines), 1980년에 데뷔해 22년간 활약했다
화려함보단 꾸준함이 강점인 선수로,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는 탈락했지만 베테랑 위원회를 통해 입성하게 되었다
화이트삭스의 초대 구단주 찰스 코미스키(Charles Comiskey)
1901년 아메리칸 리그 창설에 기여했고, 1910년에는 그의 이름을 딴 홈구장 코미스키 파크를 개장하여 1990년까지 사용했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도 했다
'아, 그럼 대단한 레전드 구단주구나'라고만 생각하면 오산인게, 블랙삭스 스캔들의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기도 하다
워낙 짠돌이였던 탓에 선수 대우가 형편없었다고 하고, 심지어 유니폼 세탁도 제대로 해 주지 않아 더러운 유니폼으로 경기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블랙삭스라고 불렸다는 말도 있다)
그렇게 선수단에 불만이 가득했던 상황에서 8명의 선수들이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것이고, 물론 그들에게 면죄부를 줄 수는 없으나 코미스키라는 사람의 공과 과는 구분해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어두운 이야기는 그만 하고, 즐겁게 경기장을 둘러보도록 하자
1901년부터 시작된 125년의 역사를 기념하는 모습이다
지금 팀에서 내세울 게 하나도 없다 보니 이런 거라도... (아 참 그만 까기로 했지...)
칭찬거리 1. 쓰레기통이 예쁘다!
꼭대기층에서 그라운드 전경을 보기 위해 올라가는 중
프랭크 토마스의 35번은 특별히 따로 기념하는 모습이다
어느 팀이나 최고의 레전드는 이렇게 남다른 대우를 받는다
시원하게 펼쳐진 경기장의 모습
깔끔한데 밋밋하다, 내가 만들었지만 '검은 챔피언스필드'라는 별명이 잘 어울린다
이 경기장에서는 말로만 듣던 시카고 북부와 남부의 격차를 몸소 느낄 수 있다
일단 남쪽을 바라보면 눈에 띄는 건물이 없고 분위기가 상당히 음침하다
남부에는 흑인들이 주로 거주하기 때문에 소득 수준도 낮고 치안이 상당히 안 좋다
심지어 이 경기장도 시카고 남부에 있다보니 주차장 주변에서 사건사고가 가끔씩 일어난다고 한다
반면 북쪽은 고층 빌딩이 즐비한 화려한 도심가가 펼쳐진다
이런 시카고의 특성 때문에 북부의 컵스는 백인의 팀, 남부의 화이트삭스는 흑인의 팀 이미지가 강하다
실제로도 경기장에서 보니 흑인들이 다른 곳에 비해 훨씬 많았고, 나름대로 스웩이 느껴지는 흥겨운 분위기였다
"그럼 야구장도 위험한 거 아니에요?" 하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도 경기장만큼은 안전하니까 괜찮다
다들 야구 보러 돈 쓰면서 온 사람들이니, 똑같이 즐겁게 즐기다 가면 된다
다만 경기 후 이 주변에서 뭘 할 생각은 하지 말고 사람들 따라 레드 라인 타고 도심으로 빠르게 복귀하는 게 좋을 것이다
이제 경기 시작 40분 전인데, 주차장이 너무 널널한 게 안타까울 지경이다
날씨 탓도 있긴 하지만, 올 시즌 화이트삭스는 암울 그 자체다
작년에 121패라는 역대 한 시즌 최다패 신기록을 달성하고 말았는데, 그런 팀이 에이스 투수마저 트레이드로 보내버렸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팀에게는 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트레이드 덕분에 유망주는 좀 받아오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올 시즌을 기대했을 팬들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보면 내 팀도 아닌데 한숨만 나온다
칭찬거리 2. 티켓 가격이 싸다! 이런 자리가 $40~60 정도 하고, 꼭대기층은 $10 이하로도 가능하다
덕분에 모처럼 선수들 잘 보이는 자리에서 야구를 볼 수 있었다
팀 영구결번들을 경기장 양쪽으로 길게 적어두었는데,
별로 눈에 띄는 방식은 아닌 것 같아서 아쉽다
일단 번호 크기가 너무 작고 폰트도 가독성이 떨어져서 마음에 안 든다
일요일 홈 경기는 Coca-Cola Family Sundays로 펼쳐진다
가족 단위로 많이 오는 날인만큼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가 많은 모양이다
특히 오늘은 Kids Opening Day였다
선수 소개 멘트, 국가 연주까지 모두 어린이가 맡아서 하는 날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라인업은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에 턱없이 부족해보인다
다행히 상대팀 에인절스도 비슷하게 헤롱헤롱하기 때문에, 나름대로 치열한(?) 승부가 예상되는 날이다
선발투수는... 누구신지...
웬만한 선수 이름 정도는 아는데 둘 다 모르겠다
드디어 경기 시작!
아무쪼록 재미있는 경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나저나 관중이 너무 없네...
응원단장까지는 아니고 어느 정도 응원을 주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크고 깔끔한 전광판, 오래된 구장이지만 스크린은 비교적 새것 느낌이다
메인 스크린 안에 주요 정보를 몰아서 보여주는 식으로 보여준다
보조 스크린이 양쪽에 한 개씩 있는 게 특징이라면 특징인데,
너무 중앙에만 데이터가 집중되어 있어서 얘네들은 쓸데없이 여백이 많다 ㅎㅎ
사실, 트라웃이 보고 싶어서 여기에 온 것 같기도 하다
한 때는 나의 영웅, 트라웃의 타석을 코 앞에서 보게 되었다
'한 때는'이라는 말이 필요없도록 올 시즌 맹활약을 펼쳐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개막 3번째 경기만에 첫 안타! ㅠㅠ
이렇게 타율 .000에서 벗어나는 트라웃이다
아직까지는 날씨가 참 좋은데, 그게 더 불안하다
일기예보에서는 토네이도 주의하라는 말까지 있었기 때문에 분명 무슨 일이 생기긴 생길텐데...
오, 닉 메이튼이라는 낯선 선수가 리드오프 홈런을 친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홈 팀의 홈런을 보게 되었다
1회에 2점씩 주고받은 양 팀, 바보들의 행진처럼 동점 상황이 그 후로 계속 이어졌다
칭찬거리 3. 구장에 맛있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도대체 무슨 냄새일까, 점심도 먹고 와서 사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냄새를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발원지를 찾아나섰다
알고보니 핫도그 가게에서 양파 볶는 냄새였다
Polish sausage라는 메뉴를 하나 먹어보았는데 역시나 아주 맛있었다
이 자리에선 홈 뒤쪽 전광판이 잘 보이지 않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
공수교대 중 심바 캠이라고 해서 어린 아이들을 번쩍 들어올리는 코너가 있었는데 너무 귀여워 ㅠㅠ
음... 일기예보가 거짓이 아니었는지 점점 수상해진다
전 화이트삭스 선수였던 몬카다와 앤더슨에게는 꼬박꼬박 야유를 한다
뭐 그럴 수도 있긴 한데,
이 사람들, 얘 에인절스 출신인 건 알고 있는건지 모르겠다
경기는 7회말, 기어코 일이 터졌다
갑자기 살벌하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워낙 순식간에 퍼부으니 방수포 펴는 것도 쉽지 않아보인다
살벌한 내용을 친절하게 안내해주는 모습
이런 상황을 종종 TV 중계로 보긴 했는데, 우천 딜레이까지 직접 경험하게 되는구나!
상상했던 이미지로는 몇 시간씩 기다려서라도 충성스러운 관중들이 경기를 기다리지 않을까 싶었지만
다들 뒤도 안 보고 집으로 가버리는 것 같다
막연히 기다리기엔 예보가 너무나 좋지 않았고, 경기를 오늘 재개할 수 있을지조차 의심스러운 상황이었기에 나도 돌아가기로 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폭우와 강풍, 우박까지 내리는 엄청난 악천후였고 2시간 48분 후에 재개되었다고 한다
경기는 8회초 솔로홈런을 얻어맞은 화이트삭스의 패배
이런 상황까지 경험해 보는구나... 하고 위안을 삼아본다
차라리 잘 됐다 싶기도 한 게, 새벽 4시 30분 기차를 타면서 하루를 시작하다보니 상당히 지쳐있는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표정이 별로 어두워보이진 않네 ㅎㅎ
시카고에서 하루 이용한 호텔은 Central Loop Hotel
가격과 위치 때문에 선택했는데 방이 좀 좁을 뿐 쓸만한 곳이었다
호텔에서 무료로 세탁기와 건조기를 이용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덕분에 빨래도 하면서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지난 시카고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단연 딥디쉬 피자를 꼽을 것이다
이번에도 꼭 다시 먹어보고 싶어서, 딥디쉬의 원조로 알려진 Pizzeria Uno에서 저녁을 먹었다
예약을 하진 않았는데 다행히 자리가 있었다
주문하면 45분이 걸린다고 해서, 맥주를 한 잔 시키고 기다렸다
요즘 미국 판매 1위라는 모델로(Modelo)를 마셔보았는데, 평범하지만 확실히 미국 3대 노답맥주보단 맛있다
1위가 된 게 맛 때문이라기보단 버드와이저의 삽질 때문이긴 한데...
딥디쉬 피자 1인분으로 주문했더니 아주 아담한 크기로 나온다
예전에는 지오다노스에서 먹었었는데, 비교해보면 이 곳이 토마토 소스의 풍미가 토핑 야채들과 잘 어우러져서 아주 좋았고, 대신 치즈가 쭉쭉 늘어나는 느낌은 좀 덜했다
아무래도 1인분이라 크기가 작아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우열을 가리기는 어렵고 모든 딥디쉬 피자는 다 맛있다!